류샤오치 전 중국 주석의 장손 수십년간 러시아인으로 살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중국 국가 주석을 지낸 류샤오치(劉少奇)의 장손(長孫)이 수십 년간 러시아인 신분으로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대혁명 때 린뱌오(林彪)와 4인방의 박해를 받아 옥중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할아버지의 기구한 운명이 장손에게도 대물림된 셈이다.

중국 언론들은 19일 “류샤오치(1898~1969년) 전 주석의 혈육인 러시아인 퇴역 군인 알류샤(53·사진)가 18일 광저우(廣州)에서 개막한 ‘류샤오치 회고전’을 참관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류 전 주석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른 데 이어 그의 업적을 회고하는 전시회도 열었는데, 장손 알류샤가 러시아에서 일시 귀국해 여기에 참석한 것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를 지낸 인물의 장손이 러시아 국적을 얻게 된 이유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이념 분쟁,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76년)과 류 전 주석의 실각을 비롯한 격동의 현대사에 있다. 모스크바 유학파인 류 전 주석은 23년 동향인 후난(湖南)성 출신의 네 살 연하 허바오전(何寶珍)과 결혼했다. 류와 허는 부부이자 혁명의 동반자였다. 두 사람은 아들 류인빈(劉允斌)과 딸을 뒀다.

32년 국민당의 압박이 강화되면서 류는 당의 결정에 따라 소비에트 근거지로 퇴각하고, 부인과 자녀들은 상하이(上海)에 남았다. 허는 아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교사로 위장해 지하 활동을 하다 발각돼 34년 처형됐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류의 아들 인빈은 성장해 모스크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50년 러시아인 동창생 마라를 만나 아들 쑤쑤(蘇蘇:알류샤)와 딸을 낳았다.

류는 48년 왕광메이(王光美)와 재혼했으며, 왕은 신중국의 첫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국가 주석으로서 실권을 행사하던 60년 류는 모스크바에서 아들과 장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중·소 이념분쟁이 터지면서 쑤쑤는 어머니 성을 따라 알류샤로 성을 바꿨다. 신분이 발각되면 고초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한 때문이다.

류 전 주석은 문혁 때 자본주의의 앞잡이로 내몰려 69년 허난(河南)성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알류사의 아버지 인빈은 아들을 모스크바에 둔 채 57년 중국으로 돌아와 원자탄 개발에 참여했으나, 문혁의 박해를 못 이겨 67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혁이 끝나고 덩샤오평(鄧小平)의 개혁·개방이 됐지만 알류샤는 중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모스크바항공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옛 소련 국가항공우주지휘센터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그는 기밀 분야 군인은 퇴역한 지 3년 안에는 출국할 수 없다는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알류샤는 결국 조기 전역한 뒤 3년이 지나고서야 처음 중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류샤오치기념관이 선물한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알류샤는 “나의 뿌리는 중국에 있다. 할아버지 얼굴이 새겨진 시계를 영원히 간직하겠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J-HOT]

▶ "예전에 쓰던 낫·망치 준비중" 은행권 구조조정 시사

▶ 앨빈 토플러 "미국도 그런 짓 안해" 한국 교육에 일침

▶ 관 뚜껑 닫히니 칠흑 속 무덤 '죽음의 5분'

▶ 4억7000만원→2억9700만원 집값 뚝↓ 떨어진 곳

▶ A매치 같지 않은 몰상식한 행동…사우디 완벽한 패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