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도주로 본 영장실질심사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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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경찰서로 되돌아가던 피의자가 도주한 사건은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우려됐던 피의자호송.계호체계의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관에서 본드를 마시다 경찰에 붙잡힌 姜모씨가 10일 서울 북부지원에서 심사를 받은 뒤 택시를 타고 중랑경찰서로 돌아오던중 담당형사가 요금을 내는 틈을 타 달아난 것이다.
이 사건은 경찰의 단순한 업무소홀 때문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제 실시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전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법원이 실질심사를 하기로 결정하면 그 시간과 장소는 검찰을 거쳐 경찰에 통지된다.그런데 붙잡아둔 피의자를 경찰서 유치장과법정 사이에서 호송하는 일은 전적으로 일선 경찰서의 책임이다.
현실적으로 일선 경찰서에서는 별도의 증원 없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기존인력에게 번갈아 이 일을 부과하고 있는데다 호송에필요한 차량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 때문에 호송도중 피의자가도주한다 해도 일선 경찰서를 탓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더욱이 영장실질심사제가 본궤도에 오르면 호송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 틀림없는데 호송업무가 계속해서 현재와 같은 식으로 이뤄진다면 도주사건등도 더불어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이 경우 모처럼 도입된 영장실질심사제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장실질심사제 시행 전부터 경찰은 끊임없이 호송전담요원및호송차량 확보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주장해왔다.그러나정부는 아직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국민의인권신장에 필요한 비용은.낭비'가 아니라는 인식 이 필요하다.
다만 피의자 호송의 문제점을 보여준 이번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영장청구를 비교적 신속하게 하고 있어 현행범 체포나 긴급체포제도가 남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한 것이 눈에 띈다.
姜씨는 8일 오후9시50분쯤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10일 오전10시쯤 실질심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즉 48시간 내에 청구는 물론 법원에 의해 영장발부 여부가 판가름날 수 있었던 것이다. 현행범 체포의 경우 과거에는 48시간 내에 영장을.발부'받도록 돼있었으나 영장실질심사제 시행에 따라 48시간 내에영장을.청구'하기만 하면 충분하도록 돼있다.이에따라 재야법조계에서는 피의자가 영장 없이 붙잡혀 있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게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춘원 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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