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물어도 답없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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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문제해결 능력의 빈곤은 어제 오늘의 일이아니지만 최근 상황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경멸을 넘어 증오와 적대감마저 느껴질 정도다.가중되는 경제 침체에 파업사태까지 겹쳐 국민 불안과 민심 동요가 심각한데 이런 상황 에 해법(解法)과 처방을 내야 할 정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거나 오히려 감정을 자극하는 역작용만 하고 있다.질문이 있으면 답이 있어야 하고,문제가 발생하면 해결방법이 나와야 할 게 아닌가.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정치의 몫인데 정치가 질문이 있어도 답하지 않고,문제가 발생해도 해결방법을 안 낸다면 바로 정치가 정치이기를 포기한 것이다.대선(大選)주자들은 많지만 답이나 해결방법을 시도조차하는 사람 하나 없으니 한심한 일이다.그들이 이 땅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딴 나라에 가서 대통령을 할 작정인가.
경제위기와 파업에 대해 1차적으로 답을 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그러나 정부가 지금껏 내놓은 답이라곤 고작 파업엔 사법처리로 대응한다는 것이고, 경제위기에 대해선 여태 종합대책도발표된 바 없다.며칠전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상황이 상황인만큼 비상한 관심과 기대의 대상이었다.대통령이 뭔가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경제를 회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었다.국민의 심금을 울리지는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혼신의 힘을 다해 호소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그러나 그런 것을 볼 수 없었다.상황에 대한 절실한 인식도,기대를걸만한 정책의지도 느낄 수가 없었다.기자회견이 있은 바로 그날주가(株價)가 15P이상 떨어졌다고 전한 방송뉴스는 대통령회견에 대한 실망감과 파업이 폭락의 원인이라고 했다.임기 1년을 남겨둔 대통령이 이런 난국에서 2년만에 가진 연두회견인데 머리좋은 참모와 측근들도 있을 법하건만 과연 무엇을 보좌했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많았다.
최근 상황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모습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법을 새벽에 날치기한게 누군데 그 노동법 때문에 빚어진 파업사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말도 없는가.이제 와서 여당은 노동법 통과는 정당했고,잘한 일이라고 하는데 그런 확신이 있으면왜 야당이나 근로자를 설득하지 못하는가.
자기들의 날치기로 인해 결과적으로 새해 벽두부터 입원환자가 아침을 굶고 몇천억원의 생산차질을 일으켜도 아무런 책임감도,자괴감도 느끼지 못한대서야 말이 안된다.이제 또 몇 명이나 몇 십명이 구속되고 사법처리될텐데 그들은 단순한 범법 자인가,.나쁜 정치'의 희생자인가.
야당도 이 비극적 인과(因果)관계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국회에서의 원천봉쇄로 대화와 협상의 기회를 다 보내고는 온나라가 파업으로 진동하는 이제서야 노동법 재개정 협상을 들고 나왔다.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왜 협상과 수정의 기회를 잡지 못 했는가.이제라도 책임있는 야당이라면 근로자의 주장은 지지하되 파업은 안된다고 말하는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대화하고 협상해야 한다.우선 만나 난국극복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영수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그것이 지금 상황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정치권의 1차적 회답일 것이다.대선까진 이제 11개월인데 새 노동법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 얼마든지 재론할 수도 있는 일이고,그 전이라도 정치적 타협으로 돌파구를 열 방법도 있을 것이다.문제는 아무 회답도 시도하지 않고 있는데 있다.
지금 상황은 심각하고 위기감은 치솟고 있다.멕시코형 경제 붕괴 가능성이 연일 외국 언론에서 경고되고 있다.우리 주변에서 늙지도,젊지도 않은 실업자의 모습이 늘어나고,내 직장.내 월급은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
흔히 과거에도 경제위기는 있었고 우리에겐 극복할 저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땐 그래도 위기에 대처하는 구심점과 집념.조직력,이런 것이 있었다.지금은 도대체 뭔가를 해낼 것 같은 의지와 추진력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더이상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대통령은 회견에서“용기와 희망을 가집시다.화합하고 단결합시다”고 했는데 정부는 서둘러 용기와 화합의 단초(端初)를 열 조그마한 근거나 구체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그리고 정치권도 대선을 앞둔 정치게임만이아닌 문제 해결의 정치,회답을 보내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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