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나의해>5.8천m 고봉 8개 등정 엄홍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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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도봉산.두꺼비 바위에 볼트를 박고 카라비너를 건 다음 오버행(암벽이 수직이상으로 나와 있는 것)을 넘는다.연신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한숨을 돌리자 두꺼비 바위너머 만장봉에서 철모르고 뛰놀던 까까머리시절의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엄홍길(37.파고다 외국어학원)이 처음 암벽타기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일요일이면 집에서 5분거리에 있는 두꺼비 바위로 암벽을 타러 내달았다.서투른 몸놀림에 암벽화도 없었으니몸에서 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키 167㎝,몸무게 66㎏.작달막하지만 다부진 체구에 구릿빛피부가 믿음직스럽다.인간한계에 도전한다는 8천 고산등정.엄홍길은 그곳을 산소통 없이 8개나 올랐다.현재까지 현역으로는 아시아 최고의 기록이다.그래서.슈퍼맨'.작은 탱크' .지게차'등의수식어가 붙어다닌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12월 안나푸르나(8천91)원정은 아직도아쉬움으로 남는다.12월8일.겨울 히말라야답지 않게 하늘은 맑았다.베이스캠프(4천3백)의 최고 기온은 섭씨 5도를 오르내렸다.안나푸르나도 이번만큼은 문을 열어주는듯 싶었 다(엄은 지난89년 겨울 안나푸르나원정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캠프Ⅱ에서 거대한 세락(빙하가 급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면서 생긴 탑모양의 얼음덩어리)에 가로막혀 발길을 돌려야했다.
지난 95년 엄홍길은 마칼루(8천4백63)원정에 나섰다.그때까지 에베레스트(8천8백48.88년),초오유(8천2백1.93년),시샤팡마(8천12.93년)등 3개의 봉우리를 올랐었다.그러나 네팔에서 만난 외국 산악인들마다.8천급 고봉을 몇개나 올랐느냐'고 물었다.오기가 생겼다.그래서 8천이상 14좌 모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라인홀트 매스너(오스트리아)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8천급 고봉 14개를 완등한 예지 쿠쿠츠카(폴란드)는 등산을.인내의 예술'이라고 말했다.체감온도가 섭씨 영하 40도를 밑돌고 산소량은 평지의 절반도 안되는 극한 상황의 고산지대.그 곳에서 가쁜숨을 몰아쉬며 오름짓할 때 쿠쿠츠카의 말은 이미 사치스런 수식어로 남을 뿐이다.
왜 힘들게 산을 오르는가.엄은“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이제는 고산에서 느끼는 고통까지도 사랑스럽다”고 한다.그는 올해 4개 봉우리를 뛰어넘으려 한다.다음달 10일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8천5백86)를 오르기 위해 원 정을 떠난다.6월에는 가셔브룸Ⅰ(8천68)과 가셔브룸Ⅱ(8천35)에 도전한다. 마음의 고향-도봉산에서 만난 엄홍길은 오늘도 등산화끈을꽉 매고 암벽에 달라붙는다..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와.설산의보고'칸첸중가가 자신을 웃으며 반길 것을 믿으면서….
〈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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