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退가정 30~50代 주부 創業 봇물-상담.강좌도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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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대치동에 사는 주부 김문선(42)씨는 남편 몰래 창업컨설팅회사를 찾았다.식품회사 부장으로 근무하는 남편이 더이상 승진하지 못하자.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그렇다고 집안에서“명예퇴직이 어떻고…”하는 얘기를 직접 꺼낼 수 없어 남편몰래 행동에 나선 것이다.
컨설팅회사는 김씨에게 동원할 수 있는 돈이 얼마냐고 물은 뒤분식점.의류대리점.액세서리점등 세가지 업종을 추천했다.
김씨는 기존 점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적성과 영업전망등을 꼼꼼히 비교 검토해 액세서리점을 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뒤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고 자신이 모아놓은 돈 5천만원과 남편이 조달해준 2천만원을 합해 7천만원으로 분당 뉴코아백화점에 귀금속코너를 열었다.
영업은 예상보다 잘돼 남편은.명예퇴직'이 아니라.자진사퇴'로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합류하기로 했다.
분당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차영선(34)씨는 남편이.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그만두자 자신도 퇴직하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컴퓨터를 잘 다루는 남편의 장점을 살려 지난해 가을 분당에 컴퓨터 CD롬 타이틀 전문점을 열고 자신은 경리를 맡았다.
명예퇴직으로.고개 숙인 남편'대신 이처럼 아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자본 창업컨설팅을 하는 한국사업연구소의 나대석 소장은“최근1년간 프랜차이즈 형태로 30여 업종,2천여 점포가 새로 생겨났는데 이 가운데 40% 가량은 부인이 앞장서 창업한 경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창업 상담자 70% 이상은 부부가 함께 온다고 말했다.
아내들의 창업 참여가 늘어나면서 자금규모도 늘고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여성창업대학원 양혜숙 원장은“얼마전까지만해도 여성들이 집주변에서 혼자 할 수 있는 5천만원대 부업을 찾았으나 요즘은 여성이 우선 자리를 잡아놓고 나중에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는업종을 찾아 자금규모도 7천만원대 이상인 경우 가 많다”고 말했다. 또 창업을 준비하는 주부도 갈수록 늘어나 포항시 여성복지회관의 경우 오는 20일부터 사흘동안 실시하는 소규모 창업 강좌의 수강자 8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했는데 1주일만에 마감됐다. 조우정 관장은“수강자 대부분이 30~50대 여성들로 남편들이 언제 당할지 모를 명예퇴직등의 사태에 대비,자립기반을 키우기 위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주부들의 진출분야는 주로 5천만~1억원의 자금으로 창업할 수있는 소규모 사업으로 이 가운데 분식점등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이 40% 가량 차지한다.그러나 최근에는 구두를 수선.세탁해주는 구두편의점등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직종 에도 주부들이과감하게 진출하고 있다.나대석 소장은“남자들은 퇴직의 충격으로상당기간 방황한다.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정보의 달콤한 일면만 보고 충분한 준비도 없이 덜컥 사업을 시작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그에 반해 여성들 은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상세히 듣고 현명하게 판단하므로 실패하거나 사기당하는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고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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