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금융사고 대책 '시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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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옛 우리카드 직원 두명이 회사 돈 400억원을 횡령해 해외로 달아나는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다. 그 뒤 한달 만인 지난 6일에는 동부생명 재무담당 직원 세명이 공금 20억원을 빼돌린 뒤 해외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에는 텔슨상호저축은행 직원이 고객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뒤 33억원을 대출받아 13억원을 주식투자 등에 사용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자 금융감독원은 여신금융협회.손해보험협회.상호저축은행중앙회 등에 공문을 보내 사장.감사 등을 대상으로 금융사고 대책회의를 열 것을 요청했다.

금감원의 지시를 받은 이들 금융단체는 일제히 지난 14일부터 금융사고 방지 대책회의를 연다는 내용의 '긴급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손해보험협회가 14~15일 이틀간 '긴급 손해보험사 상임감사 및 감사실장 연석회의'를 열었고, 상호저축은행중앙회는 17일 '긴급 사장단회의'를 개최했다. 여신금융협회도 같은 날 49개 회원사 감사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역시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명칭에는 모두 '긴급'이란 단어가 붙었지만 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긴급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회의에서는 금융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금감원 감사담당 국장이 나와 설명하는 금융사고의 유형과 원인.방지대책 등을 듣는 데 그쳤다. 심지어 이 자리에서는 금감원 관계자가 금융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금감원 관계자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정신교육'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교육내용도 금융회사 담당자가 알고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에 금융사고 방지에 노력해 달라는 당부 차원에서 회의를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체계적인 대비책이나 알맹이가 없는 대책회의만으로 과연 금융사고가 막아질지 의문이다.

김창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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