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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그리고 현충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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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계절의 여왕 5월이 다 저물어가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나날을 들이마실 틈도 없이 어린이날이 다가왔고 어버이날을 맞았다. 스승의 날도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갔다. 이번주 들어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 21일은 '부부의 날'이란다. 다음주면 또 막내의 귀빠진 날이니 모르는 척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석가탄신일이 있어 5월의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져 볼 생각이지만 주변의 불자들은 이 날이 더 분주할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5월은 느낌도 많고 생각도, 할 일도 많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빛이고 봄바람에 실려 오는 상큼한 냄새에 코끝이 찡하다. 살아 있음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계절에 부모를 생각하고 스승을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른들로부터 생명을 얻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어린 새싹들을 축복하는 것 또한 5월의 어느 날쯤이 제격일 듯싶다.

그러다가도 막상 5월이 돌아오고 정신없이 허둥대다 보면 이건 좀 아닌데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날씨라면 4월도 나쁘지 않고, 스승은 방학이 있는 달에 찾아뵙는 것이 더 여유로울 것이다. 그래서 4월의 어느 날쯤에 어버이날이 있고 7월이나 8월의 어느 날쯤에 스승의 날이 있으면 은혜를 생각하고 보답하려는 마음도 좀더 애틋하고 깊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기념일의 의미를 헤아리다 보면 특정일이 아니라 주간이나 어느 달을 정해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종종걸음을 치지 않고도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선생님을 따로 모실 수도 있을 테니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고 해도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흡사 북새통을 이루는 듯하던 기념일을 보며 아쉬움이 크다. 자식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부모들이라면 어린이날만큼은 내 자식 아닌 남의 자식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떠받들고 싶어도 힘에 부쳐 어쩔 수 없는 누군가가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을 마음 아파해야 하고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짐을 지고 사는 어린 새싹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내 자식과 더불어 한 세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버이날도 마찬가지다. 내 부모라면 함께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일년 내내 틈나는 대로 문안을 드리고 때마다 찾아뵙고 있을 터이니 어버이날이라고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버이날에는 그렇게 공양받지 못하는 외로운 노인들을 생각하고 위로해야 한다. 그래도 내 자식, 내 부모가 중요하다면 차라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새로 생긴 부부의 날까지 묶어 '가족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희미해져 가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이제 6월이 온다. 내 자식, 내 부모, 내 스승이야 각자 알아서 잘 챙기겠지만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고마우신 분들은 나라가 나서서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 현충일을 그저 집에서 쉬는 날로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지역 사회의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리고 기억하도록 해 그 가족과 후손들이 긍지로 삼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아직도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에서, 또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미군의 시신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9.11 테러사건이 터졌을 때, 그래서 많은 뉴욕의 소방관들이 목숨을 던져가며 자신들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마운 일은 고마워할 줄 알고 미안한 일은 미안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안한 일은 자꾸 안 하게 되고 고마운 일은 자꾸 더하게 된다. 스승의 날과 현충일이 꼭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홍승찬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