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경제세상] 부산·광주, 수도권 규제완화 화낼 일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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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2면

내 고향은 부산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때만 해도 부산을 제2의 대도시라 여겼고 울산과 거제도는 ‘촌 동네’ 취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전이 벽해가 됐다. 울산과 거제보다 못사는 곳으로 전락했다. 울산의 2006년 1인당 생산액은 3862만원이지만 부산은 3분의 1(1350만원)밖에 안 된다. 부산 사람은 울산과 거제에 빌붙어 살아야 할 팔자라고 자조한다. 울산까지 고속도로를 새로 만들고 거제로 가는 가거대교를 건설하는 건 ‘부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지갑을 풀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서울에서 살다 내려간 한 대학 교수는 ‘부산 공화국’을 만들어 대한민국에서 독립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며, 테러리스트나 할 법한 주장까지 내뱉는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자 부산이 거세게 반발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부산뿐 아니라 수도권을 뺀 나머지 지역은 모두 결사반대다. 안 그래도 죽겠는데 규제 풀면 진짜 죽는다고 한목소리다. 그러나 충청도라면 모를까, 다른 지방은 그렇게 반발할 일 아니다.

곰곰 생각해 보자. 30여 년의 수도권 규제 역사 속에서 부산이 이득을 본 건 대체 얼마나 될까. 경제가 좋아지려면 대기업이 옮겨 와야 한다.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규제 때문에 부산으로 옮겼다는 대기업 얘기는 별로 들은 바 없다. 이건 광주와 대구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인접한 충청 지역만 혜택 봤다. 삼성전자는 천안으로 옮겼고, 현대자동차는 아산을 키웠다. 지역별 국내총생산 통계도 그렇게 나온다. 영남은 1994년 27.3%에서 2006년 27.1%, 호남은 10.6%에서 10.1%로 줄었지만 충청권은 10.1%에서 11.4%로 늘었다.

통계도 못 믿겠다면 대기업에 한번 물어보라. 삼성전자는 한때 직원들이 수원은 가도 천안까지는 못 가겠다고 해서 애를 먹었다. 해외주재원 생활이나 다를 바 없는데 왜 가느냐고 했단다. 이런 마당에 호남과 영남까지 내려갈까. 차라리 외국으로 나가는 게 백 배 낫다고 생각할 게다. 균형발전을 모토로 삼았던 노무현 정부의 조사 내용도 그러했다. 해외 이전 기업 중 37%가 수도권 규제를 이유로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부산·광주·대구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목소리 높일 까닭이 별로 없다. 충청도는 직격탄을 맞기에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지방은 다르다.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이 아니다. 오히려 규제완화로 늘어날 국부를 가급적 많이 받아내 발전 재원으로 삼는 게 훨씬 이득이라 생각한다.

정말 한심한 건 이 정부다. 이번에 푼 내용은 지방이 그렇게 들고 일어날 일 아니다. 생산라인을 늘리고 건물을 더 지으려면 기존 공장 옆에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규제 때문에 정상은 파행으로 변했다. 그만큼을 떼서 비수도권으로 옮겨 지어야 했으니 기업 손실은 막심했다. 이번에 푼 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규제들이다. 재료가 좋으니 요리 솜씨가 웬만큼만 됐어도 극심한 갈등은 피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지방의 피해의식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이처럼 날탕으로 하진 않았을 게다. 규제완화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고 수도권 경쟁력 강화라는 용어를 써야 했다. 공청회는 수십 번이라도 열고 지방 사람은 다 만나 설득하겠다는 각오를 했어야 했다. 교부금을 최대한 많이 주겠다는 내용의 지방경제 발전대책도 같이 발표하는 게 옳았다.

노무현 정부도 내용만 생각했지 절차와 형식을 생략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갈등을 양산했다. 그런데 이 정부가 하는 짓이 판박이다. 이해찬 전 총리나 강만수 장관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이유는 그래서다. 국민과의 소통은 필요 없다는 오만의 극치 때문이거나 머리가 나빠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치는 아마추어리즘 때문일 게다. 이 정도 갖고도 이렇게 시끄럽다면 공장총량제를 푸는 건 어림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정부를 잇따라 맞는 나도 억세게 재수없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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