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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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3면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동(鵲隱洞)은 ‘까치가 숨어든 마을’이란 뜻을 지녔다. 오죽 외진 산골이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마는 소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던 이들에게 작은동은 하늘이 내린 땅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고립과 소외를 받아든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농부 문상의(1903~2003)다. 열다섯에 농사를 짓기 시작해 팔십여 년을 흙에 손을 묻고 산 그이는 씨 뿌리고 열매 거두는 일을 일종의 삶에 대한 고집처럼 견지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이 경상도 할배를 애인마냥 몇 년에 걸쳐 쫓아다닌 이는 ‘글 쓰는 사진가’ 이지누(50)씨다. 그이 또한 ‘우리 땅 밟기’를 삶의 전부처럼 여기는 고집쟁이인지라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선물이 되었다.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는 1999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까지 작은동 문옹 집과 논밭 언저리에서 두 경상도 사내가 나눈 이바구의 기록이다. 짙은 경상도 사투리가 흥을 돋운다.

“이기 누꼬…, 집은 다 핀체, 어른들도 다 핀안하시고?” “할배요, 좀 쉬었다 하지요.” “그래…….” “밤에 추풍령 넘어갈 수 있나.” “예 갈 수 있심더.” “그래…….” 문옹은 유달리 “그래……”라고 길게 끄는 말을 잘했다. 여운이 긴 “그래……”라는 대답은 백 년 세월을 꼿꼿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향기 짙은 말 추임새요, 삶의 여백이다. “생각은 불가(佛家)의 선사들보다 오히려 간결했으며, 말은 함축적”인 문옹의 토박이 삶은 ‘민중 자서전’으로 우리 머리를 울린다.

문옹이 잘 흥얼거리던 노래 ‘꽃아, 꽃아, 설워 마라’를 듣다가 이지누씨가 이규보의 시 한 수를 읊었다. “비 맞으며 논바닥에 엎드려 김매니/ 흙투성이 험한 꼴이 어찌 사람 모습이랴만/ 왕손 공자들아 나를 멸시 말라/ 그대들의 부귀영화 농부로부터 나오나니.” 문옹의 답가는 이러하였다. “참, 좋네, 그거 쓴 사램이 누군지 몰라도, 지대로 된 사램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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