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패권 넘보는 유럽의 야심 … “금융위기 우리가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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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할 새 경제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번 주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워싱턴으로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이 많이 빠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계 경제를 어지럽힌 금융위기의 주역인 데다 곧 물러날 사람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앞세운 유럽이 기세를 올리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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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워싱턴 G20 정상회의와 남미 순방, APEC 참석을 위해 14일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기세 등등 유럽=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으로 떠나기 하루 전인 13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일한 ‘세계 통화’였던 미 달러화가 더는 그런 역할을 못하게 됐다고 설명하러 간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척점에 프랑스를 세운 것이다. 가능한 한 많은 우군을 끌어들여 프랑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된 도발이다.

미국에 내준 경제 패권을 찾아오기 위해 유럽은 두 가지 표적을 겨냥하고 있다. 우선 달러다. 미국이 마음대로 찍어내는 달러를 세계 통화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면 자연스럽게 권력도 넘어온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도 복잡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강화다. 유럽연합(EU)은 지난주 정상회의를 열고 ▶투기성 헤지펀드 규제 ▶조세 피난처로 이용되는 도시와 국가 규제 ▶국제신용기관 투명성 제고 등의 요구사항을 마련했다. 초국가적인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할 예정이다. 또 미국 입김이 강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를 대신할 새로운 기구 조성도 제안 목록에 들어가 있다.

◆신중한 미국=‘이빨 빠진 호랑이’라곤 해도 부시 대통령은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각국 정상을 맞기 하루 전인 13일 뉴욕 월가로 날아갔다. 보수 성향 연구기관인 ‘맨해튼 인스티튜트’ 연설에서 “정부 개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 개혁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해결책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라며 “성장을 위한 확실한 방법은 자유시장”이라고 했다. 초국가적 금융감독기구를 만들자는 유럽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또 “미국보다 규제가 엄격했던 유럽도 주택 버블로 고통받고 있다”며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유럽 쪽을 슬쩍 비틀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일단 뒷짐을 지고 있다. 오바마는 이번 회의에 클린턴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공화당 출신의 짐 리치 전 하원의원을 대표로 보낸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들은 오바마 정권의 경제 정책에 영향을 줄 인물이 아니다”라며 “오바마가 이번 논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각각인 신흥국 입장=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지켜보는 다른 나라 의 셈법은 제각각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14일 “일본에 대한 세계의 기대가 크다”며 “과거 금융위기 경험을 제시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IMF가 신흥국을 지원할 수 있도록 100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제안할 예정이다. 돈의 힘으로 영향력을 사겠다는 계산이다. 중국·브라질 같은 신흥국 대표주자도 발언권 강화를 벼르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개발도상국 지원 확대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교착 상태에 빠진 세계 무역회의 재개를 카드로 준비했다.

최현철·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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