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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들의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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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악어''배추' '말코' '용팔이'를 아십니까?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별명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전에도 선생님들의 존함보다는 별명으로 통하던 그 시절에 당신들은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으셨지요.

5월이 되고 스승의 날을 맞이하고 보니 옛 은사님들의 생각이 더욱 간절해져만 갑니다.

지난해 말 친한 친구들과 동창회를 준비하면서 "몇 십년 만에 졸업할 당시의 담임선생님들을 모셔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모두가 동감해 여기저기 수소문해 가며 동창회 날 선생님들을 모셨지요.

놀랍게도 그날 100여명이 넘는 동기동창이 참석했고 이제는 대부분 정년퇴임을 하신 선생님들을 한분 한분 뵐 때마다 너무 많이 변한 모습에 코끝이 시큰거렸답니다. 대부분의 친구는 20년이 넘는 세월의 공간을 넘어 그렇게 위엄 있던 선생님들께서 이제 노년의 나이로 변해버린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식이 시작되고 1반부터 10반까지 당시의 담임선생님들을 소개하면서 추억의 사진첩을 다시 꺼내들었지만 어떤 반의 경우는 이미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학창시절의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던 친구들의 눈이 붉어지던 순간이었지요.

식이 끝나고 여흥의 시간을 가졌을 때 반마다 선생님을 모시고 노래를 불렀는데 몇몇 반은 선생님 없이 제자들만이 외롭게 모여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지요.

한 친구가 "우리는 고아반이야"라며 탄식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구나! 그 시절에 우리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아버님.어머님의 모습으로 서 계셨구나!" 라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참석하신 선생님 중에는 몹쓸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도 많아 안타까움은 더해만 갔지요.

그래도 우리 반을 맡으셨던 선생님을 10여년 전부터 가끔 모셔왔기에 그나마 부끄러움이 덜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선생님 자녀분의 결혼식이 있던 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누(累)가 될까봐 특별히 소식을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생님의 속 깊은 마음과 상황을 우리가 핑계 삼는다 해도, 당일 수많은 제자 중 아주 적은 숫자만이 그 자리에 온 것을 보고 스승과 제자의 정이 학교를 벗어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참으로 쉽게 메말라 갔구나 하고 자책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선생님들의 엄중한 꾸짖으심을 달게 받았으며 감히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위엄과 기품을 가진 분들이 선생님들이셨는데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엷어지는 듯하니 인생이 참 어렵다는 게 새삼 느껴지네요.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신 선생님들의 가장 큰 보람은 제자들이 훌륭하게 커주는 것과 동시에 그 장성한 제자들과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선생님들이 생존해 계실 때 자주 찾아뵙는 것이 제자 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몇몇 친구와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인자하신 선생님의 미소와 사랑에서 가슴이 따뜻하게 적셔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날들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언젠가 세월이 더 많이 흘러 우리들이 다시 한번 모실 선생님조차 한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행복한 세월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잊히지 않을 '5월 그 어느 날'의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건우 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