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문학평론가들 다시 '칼' 뽑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계간 문예지 여름호에 중량감 있는 문학평론가들이 글을 발표했다. 백낙청(66)씨는 '창작과비평'에 소설가 배수아씨가 지난해 말 펴낸 장편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분석한 평론 '소설가의 책상,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기고했다. 문학과지성사 1세대 평론가인 김주연(63)씨는 '문학과사회'에 게재한 글에서 1990년대 여성 평론가들의 비평작업을 '비평'했다.

백씨가 국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작품론을 발표한 것은 97년 신경숙의 장편 '외딴방'을 평가한 이후 처음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민족문학론.리얼리즘 등 창비가 그 동안 보여줬던 문학적 지향과는 동떨어진 배수아씨의 작품이라는 점이 의외다.

백씨는 먼저 소설 속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지점에 걸쳐 있는 '에세이스트…'의 장르적 특성에 주목했다. 백씨는 많은 분량의 독서 감상과 음악평, 관념적 담론 등이 소설 도처에서 발견되고 선명한 줄거리가 없는 점 등을 소설의 에세이적인 요소로 지적했다. 그러나 "줄거리가 없기는커녕 거의 교활하다 싶을 정도로 치밀한 운산(運算)과 정교한 복선을 깔고 펼쳐지는 서사(敍事)를 포함하고 있어 소설이 아니라고 속단할 일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백씨는 소설로서의 '에세이스트…'의 문학적 성취를, 여성작가인 작중 화자 '나'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호하게 그려진 'M'과의 사랑과 이별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평가한다. 나와 M은 마치 음악 연주와 같은 육체적 관계를 초월한 '정신적 교류'에 찬성하지만 M이 '남성'과 순전히 육체적 호기심에서 섹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별한다. 그러나 M의 부도덕한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은 다소 분명하지 않게 처리된다. 백씨는 "'에세이스트…'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존재를 부각하기는 하지만 규명의 노력이 뒤따르기보다는 새로운 신비화의 도취의 언어가 시야를 가려버리곤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연씨의 평론은 '1990년대 이후 젊은 평단 지형 읽기'라는 대주제 아래 세 차례에 걸쳐 분재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이다. '페넬로프는 천사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씨는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여성 평론가들을 세 부류로 나눴다. 여성 평론가들의 비평 작업은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모성성과 섹스의 통합적 차원에서 관찰해 왔다는 점에서 대체로 공통적이다. 하지만 김용희.김미현.황도경 등이 분석적.감성적인 비평작업을 해온 데 비해 박혜경.이혜원.정끝별 등은 객관적.추론적인 비평에 치우쳐 있다. 한편 신수정.최성실 등은 성 담론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적 지향이 강한 여성적 글쓰기를 선보여 왔다.

김씨는 "'한국 문학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여성 정체성과 실존의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김용희씨의 주장이 90년대 페미니즘을 쇄신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씨의 언어가 그로테스크하고 신경증적인 여성 전사적 글쓰기를 넘어 '젖은 것''따뜻한 것''모성적 언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