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연설 모습은 교향곡 지휘자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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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연설을 잘 한다.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를 사로잡은 것도, 2004년 여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은 것도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 솜씨가 한몫했다는 평이다.

그런 오바마의 연설을 2004년부터 주목하고 분석해온 인물이 있다. 김미경(43) 아트스피치연구원 원장이다. 그는 “오바마는 도입부에서부터 절정, 피날레에 이르기까지의 한 편의 연설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 같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때에 따라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고, 행진곡에서부터 왈츠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선 말을 더 빨리, 크게 하다가, 어느 순간 말을 일순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냅니다. 청중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 거에요. 그의 지휘에 따라 청중은 울고 웃지요.”

16년 동안 말하기 기법을 가르쳐온 김 원장은 2년 전 음악처럼 연설하는 ‘아트 스피치’를 고안해 강의해왔다. 포르테(세게)·피아니시모(여리게)를 비롯해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등으로 리듬감 있게 연설하는 기법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

김 원장은 어려서부터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만큼 말재주가 좋은 ‘말짱’이었다. 친구들의 연애 상담을 도맡았을 정도였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졸업 뒤 리더십 강의를 들었다가 ‘말하는 걸로 먹고 사는 직업’이 마음에 들어 스피치 강의를 하게 됐다. 마이크 잡을 일이 많은 기업임원·정치인·대학강사들을 대상으로 ‘말 잘하는 법’을 강의해왔다.

그는 “말을 매끄럽게 잘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라며 “쉬운 말을 써서 머리가 아닌 가슴에 감동을 주는 것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바마가 연설 중간 중간에 ‘예스, 위 캔(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이란 구호를 계속 집어넣은 것도 효과 높은 연설 기술의 하나”라며 “그렇게 해서 듣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공감할 기회를 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말을 하면서 적절한 몸짓과 손짓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바마는 지휘를 하듯 팔을 크게 움직이거나 강조하는 부분에선 집게 손가락을 들어요. 그러면서 청중과 골고루 눈빛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지요. 청중을 끌어들이는 거죠.”

그는 문화가 다른 한국 정치인들은 연설할 때 밋밋하고 뻣뻣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움직임이 거의 없어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지루해 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스피치 댄스’까지 개발했어요. 유용한 손짓과 동작을 음악에 맞춰 연습하는 거죠.”

오바마가 연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도 주목했다. “연단을 양손으로 잡고 몸을 숙이기도 하고, 그 밖으로 걸어나가기도 하지요. 정확히 계산된 움직임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겁니다.”

연설을 하면서 생활 주변의 일화를 곁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막연히 ‘여러분, 힘드시죠?’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짜증만 납니다. 오바마는 당선 연설에서 그에게 투표한 106세 앤 닉슨 쿠퍼 할머니의 삶을 예로 들어 흑인들이 살았던 고난의 세월을 이야기했어요. 이를 들은 미국인들은 자신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한다고 느끼고 찡했을 겁니다.”

김 원장은 강연을 할 때 청중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느끼도록 맞춤 어법을 구사한다. 강연 대상과 비슷한 사람들을 미리 만나 그들의 대화를 녹음하고 분석한다. “수퍼마켓 주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일이 있었어요. 강연 전에 동네 수퍼마켓에 가서 ‘업계’ 용어를 익혔어요. 그렇게 공부하고 가면 청중의 몰입도가 확실히 달라져요.”

그는 “타고난 연설가가 아니라도 노력만 하면 오바마의 연설기술을 익힐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달변이라고 연설을 잘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은 말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도 되려 역효과를 낼 수 있어요. 오바마처럼 청중의 마음에 파동을 줘야 진정한 연설가죠. 일부에선 ‘입만 살았다’면서 말 잘하는 사람을 좋지 않게 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입이 살아야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말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오바마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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