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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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50·사진) 소장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대표적인 한인 인맥으로 꼽힌다. 그는 미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측에 “한인 사회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한인들을 많이 쓰라”고 조언했고, 대선 때는 오바마를 적극 지원했다. 김 소장은 9일 “미국의 새 대통령을 바로 알아야 한다”며 본지에 글을 보내왔다.

오바마 당선인은 4일 승리연설에서 핵심 참모인 두 명의 데이비드를 언급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와 데이비드 플루프인데, 세 사람은 철학이 같다고 한다. 한번 심사숙고해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간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캠페인 매니저인 플루프가 이끌어 온 오바마 캠프는 선거운동 시작부터 선거일까지 단 한 명의 스태프도 교체하지 않았다. 조직과 홍보, 이슈 개발을 총지휘한 액설로드는 ‘변화’를 내세운 선거전략을 끝까지 유지했다. 오바마는 이들 참모에 대한 믿음을 마지막까지 갖고 있었다.

오바마의 의사결정 방식은 독특하다. 먼저 ‘캠페인 전략회의’에서 자신의 상황인식을 설명한 뒤 참모들의 기탄없는 의견을 듣는다. 참모 의견을 종합해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고, 자기 의견을 먼저 말한 뒤 교정받는 방식이다. 회의에서 침묵하는 참모는 반드시 따로 만나 그의 의견도 듣는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별도의 토론을 거친다. 참모들과 상황인식을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함께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신념은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지역사회 활동을 할 때 터득한 지혜다. 여기서 풀뿌리 선거운동 방식이 탄생했다.

한인사회와의 인연도 풀뿌리 전략이 계기가 됐다. 2006년 10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차 뉴저지를 방문한 오바마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아시안계의 투표참여율에 관해 대화하다 아시아 사회의 현안에 초점을 맞추면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특히 오바마는 지난해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한인유권자센터가 풀뿌리 운동으로 일본의 거대 로비를 이겨내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와 그의 가족·참모들이 시카고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4일(현지시간) 밤 대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모습이 공개됐다. 개표 초반 일부 경합주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박빙의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아내 미셸右과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오바마 당선인(왼쪽 사진).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左)이 승리를 확정지은 오바마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시카고 AP=연합뉴스]


상원의원인 오바마는 2월 12일 포토멕 프라이머리(예비경선)를 하루 앞두고 열린 상원외교위원회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련 발언을 했다. 그는 의회에 자신의 발언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요청하면서 “한·미 관계에는 200만 이상의 한국계 미국시민과 10만여 한국 내 미국시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한인유권자센터가 오바마 캠프의 전략가들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강조한 것이었다. 오바마가 풀뿌리 단체의 의견을 직접 수렴해 소신 있게 발언한다는 것을 확인한 기회였다.

오바마는 지역사회 풀뿌리 사회운동 단체들의 의견은 직접 일일이 챙겨 의정활동에 반영했다. 도시빈곤, 가정폭력, 청소년 선도, 정치 참여 등 비영리 기관들을 주요 의정활동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시민들의 요구에 정확하게 부응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선거전략팀에도 캠페인(선거운동) 대신 무브먼트(movement·사회운동)란 말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캠프의 작동 방식도 철저하게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보텀 업’(bottom-up) 방식이다. 오로지 핵심 측근과 그들이 아는 제한된 인맥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오바마가 일찌감치 유세에서 비판한 “워싱턴의 오염물”이다.

오바마의 리더십은 경선 과정에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잘 드러났다. 올 3월 오하이오와 텍사스에 2000만 달러를 쏟아 붓고도 대패했을 때 오바마의 리더십은 소리 없이 발동됐다. 당시 오바마는 시카고 본부에서 긴급 전략회의를 소집했다. 캠프의 침울한 분위기부터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오바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패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책임이라며 떠안는 그의 겸손한 모습에 핵심 전략가들부터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내 캠프 전체에 다시 뛰자는 분위기가 퍼졌다.

오바마는 과묵하지만 타인을 대할 때는 부드럽다. 플루프는 기자들에게 “오바마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정치인은 기억에 없다”고 자주 말했다. ‘참모와 캠프 직원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후보’라는 평가가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오바마 캠프에는 자원봉사형 직원들이 점점 불어났다. 대다수가 당적이 없는 정치권 내 고급인력들이었다. 이들은 전국으로 파견돼 오바마가 고른 지지를 얻는 데 큰 힘이 됐다. 오바마 리더십의 뿌리는 그의 성품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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