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도 즐길 줄 알아야 진짜 내 것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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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15면

휴대전화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TV에서 크게 광고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떤 게 있는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기조차 힘들다. 한 가지 모든 기종에서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은 2년 정도 있으면 무슨 이유에서든 바꾸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계의 한계가 그러한지, 인간의 열망이 만들어낸 우연인지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특별히 거칠지 않은 성격의 남편이 정확하게 2년 만에 새 휴대전화로 바꿨다.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자꾸만 통화 중에 끊기잖아.” 누가 뭐랬나. 그날 저녁, 남편은 내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새 장난감을 산 것이니 얼마나 신날까. 내 것도 아닌 데다 원래 기계 매뉴얼 읽는 데는 젬병인 나의 관심은 딱 하나에만 쏠렸다.

‘껍데기’. 남편의 새 휴대전화에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휴대전화 보호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눈에 거슬렸다. 검정과 회색 일색이던 1세대 휴대전화와 달리 요즘의 휴대전화들은 무지갯빛 컬러를 갖고 있다. 뒷주머니에 놓고 깔고 앉아서 부러졌다는 우스개 소리가 들릴 만큼 초경량 슬림 폰으로 제작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빛의 각도에 따라 두 개의 컬러를 보이는 것도 있고, 아예 거울 기능을 하는 휴대전화도 많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모서리를 잘 처리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 모양의 디자인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디자인의 장점이 모두 그 투박한 플라스틱 갑옷 안에 갇혀 있다!

얼마 전 출장길에서 동행한 일행 중 세 명이 로밍 폰을 빌렸다.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컬러. 그런데 둘의 것에는 없는 게 내게는 있었다. 플라스틱 껍데기. 로밍 폰 대여 센터에서 일괄적으로 보호 커버를 씌워서 준 게 맞다. 그런데 나는 무심하게 지나쳤고, 두 사람은 세련되고 날렵한 디자인을 가려 버리는 셀룰라이트 덩어리 같은 플라스틱 커버를 빼 버린 거다. 세 사람의 손에 동시에 들린 휴대전화를 상상해 보라. 세 쌍둥이 중 내 것이 제일 둔해 보였을 게 뻔하다.

일하는 작업장의 특성상, 물건을 잘 간수하지 못하는 개인의 특성상 휴대전화나 MP3에 커버가 필요한 경우는 분명 있다. 그리고 이 작은 선택이 그 사람의 스타일을 판단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신상’을 ‘간수한다’는 목적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점원의 상술에 넘어갔다면 그건 좀 그렇다. 현대는 디자인의 시대다. 그리고 그 발전된 디자인은 갤러리나 박물관에 있지 않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애지중지 아끼기보다 즐기는 게 디자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권리 아닐까. 그리고 솔직히 플라스틱 커버가 두꺼울수록 사람이 좀 쪼잔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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