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서울 후암동 '한독주름' 사장 최병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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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올해 36세의 최병구씨는 유난히 바지 입은 여자들을 못마땅해한다.그러나 뭇 남성들처럼 여성들의 날씬한 각선미를 보기 위해그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그의 직업은.주름잡는 사나이'.
지난 15년간 옷에 주름잡는 일만 해왔다.그러다 보니 주름을잡을 수 없는 바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직업은 그래서 못 속이나 보다.
“주름치마는 인체의 곡선미를 살려주기도 하고 감춰주기도 하니몸매에 상관없이 잘 입을 수 있는 옷이지요.” 지난 몇년간 여성들의 패션이 바지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인다.
들어오는 일감만 보면 바지가 유행인지 치마가 유행인지 금방 알수 있다.더구나 요새는 의류업체들이 인건비가 비싸다고 저마다 옷공장을 해외로 내보내 일감이 부쩍 줄었다.
그는 자신을 한국에서 가장 주름을 잘 잡는 사람으로 내심 자부하고 있다.그리고 지난해 주름업체로는 가장 크다고 알려진 한독주름을 인수했다.주름인생 14년만의 일이다.인수라고 해봐야 큰 사업가들이 보면 웃을지 모른다.
서울후암동 언덕바지 한 작은 건물의 지하 70여평이 그의 공장이다.그러나 한국 최고라는 갖가지 주름기계들과 인력만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할 수 있다.대당 1억원씩 하는독일산 60인치형 외주름기계와 전면 심지접착기계 ,일본산 잔주름기계등이 낡고 허름한 공간을 꽉 메우고 있다.
주름의 생명은 무늬와 수명.한번 잡힌 주름은 입은 사람의 수명과 함께 하게 할 자신이 있다.대우.코오롱상사.쁘렝땅백화점.
동우실업.우보실크등 굵직한 고객업체 20여개가 이를 입증한다.
직원 5명에게 월 1백60만~1백70만원씩 주고 나면 그가 가져가는 급여도 별로 다를 바 없다.한때 전 주인이 월 2천만원씩 가져가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월 5천장 정도의 주름치마 원단을 만들어 내는 정도다.그 탓인지 그동안 서울 및 수도권 일원에 80여개나 되던 주름업체들이 이제 30여개로 줄어들었다.그러나 그는 최고.최대의 주름업체를 키우는 게 꿈이다.패션이살아 있는 한 주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일본은 주름전문가가 대접받고 주름업체가 기업화돼 있을 정도입니다.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 믿어요.” <고혜련 기자.사진="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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