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걸림돌 합의借名 시비-비자금재판 무죄판결로 불거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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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합의차명을 금융실명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가.16일 전직 대통령 비자금 항소심에서 이름을 빌려준 기업인들이 무죄로 판결나자 이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93년 8월 전격 실시된금융실명제는.실명거래등에 관한 긴급명령'을 근간 으로 한다.금융기관 직원이 창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해야 한다는게 골자다.이를이행하지 않으면 금융기관 직원이 처벌(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받는다.고객은 처벌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양해아래 이름을 빌리는 합의차명.이때 금융기관 직원이 알선했다면 과태료를 물고 은행감독원의 징계를 받는다.여기까지가 긴급명령이 적용되는 범위다.더 나아가 금융기관직원이 각종 범죄(수뢰.탈세.마약등)와 관련된 차명을 알선.묵인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물론 관련 형법이 적용된다.이름을 빌린 고객이 차명을 통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형사처벌을 받게된다.노태우(盧泰愚)씨가 수뢰죄로 걸린 것이 이 경우다.
盧씨에게 이름을 빌려준 기업인들은 어떤가.盧씨와 공범이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하지만 단순히 이름만 빌려줬다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궁여지책으로 검찰은 금융기관 업무방해죄로 걸었으나 이번에 무죄가 된 것이다.이렇게 되자 검찰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금융실명제에 구멍이 났다고 비난하고 있다.차명 쌍방을 모두처벌하는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얘기인가.예컨대 남편이 월급을 받아 부인에게 건네주고부인이 자기명의의 통장에 입금한 경우도 차명이다.이런 경우를 처벌하지 않으려면 법에 용인되는 차명의 경우를 일일이 열거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결국 차명은 일괄 적으로 처벌할 수 없으며 범죄관련 여부에 따라 사법부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것이다.이에 대해.돈세탁 방지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크다.
이는 금융기관 직원이 거액의 금융거래나 의심스러운 거래를 신고하게 하자는 것이다.하지만 신용사 회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우리 현실을 감안할때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재정경제원 금융실명제 실시단은“금융실명제로 차명을 모두 가려내 처벌할 수는 없다.선진국도 같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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