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우리시대의 DJ 전영혁-진귀한 록과 재즈의 메신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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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에서 비틀스의 음악을 처음 듣고 마음이 흔들린 전영혁은 학교에 가서 비틀스에 대해 질문했다.선생님은 대답 대신 꾸지람만 했다.

비틀스가 훨씬 좋은데 왜 선생님은 클래식만 들으라고 하는 걸까. 전영혁은 완성도 높은 대중음악에 집착한다.느끼한 미국 스탠더드 팝만을

들려주던 70,80년대 FM의 팝 프로그램을 그는 싫어했다.클래식만큼이나,

때로는 클래식보다 더 깊이 있는 서구 대중음악을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그를 DJ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심야방송은 그래서 한동안 정통 록과 프로그레시브,헤비메탈과

재즈의 유일한 발신지가 되었다.10년간 KBS-FM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흘러나오는 괴이하고 소란스러운 음악들은 소수이지만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낳았다.

‘청취율이 낮다’‘너무 이상한 음악만 튼다’는 안팎의 공격을 견뎌내며

그의 프로는 영미 대중음악이 도달한 깊이와 넓이를 한껏 품었고,그에게는 마침내 ‘심야의 폭군’이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안겨졌다.

90년대 재즈·록 르네상스의 일급 배후조종자 명단에 그를 올려놓는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당대 음악광들의 시야와 취향을 선도한 길잡이요,숨은 스승이었다. 52년 서울생으로 올해 나이 45세.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음악과 영화에 빠져 청소년기를 보냈고,경기고를 거쳐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충무로 영화기획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가 음악잡지 ‘월간 팝송’편집장,음악 프로그램 구성작가등을 거친 뒤 DJ로 발탁됐다.수입의 거의 전부를 음반 구입에 쏟아붓는 대책없는 생활을 하다보니 결혼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스타DJ 군을 형성했던 박원웅·황인용등이 일선에서 물러나고,신해철·윤상 등이 신세대의 감각을 사로잡는 새물결의 와중에서도 심야의 제왕으로서 그의 지위는 굳건했다.클래식까지 포함한 모든 음악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행을 개의치 않는 고집스런 음악관이 그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것이다.같은 시기에 '별이 빛나는 밤에' 에서 12년간 '별밤지기'노릇을 한 이문세는 아기자기한 재담과 달콤한 주류음악을 섞어 한시대를 장악했다. 반면 전영혁은 거의 불친절하기까지 느껴지는 나른한 목소리로 진정한 음악광들이 목말라 하던 숨은 명곡을 귀신같이 집어내 전해주었다.

그의 심야방송이 수치화된 청취율로 평가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심야 제국은 지난 11월 한시대를 접고 새로운 연대기를 열었다. 10년동안 장수하던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재즈피아니스트 정원영씨가 진행하는'음악세계'로 바뀌었고 그의 심야방송은 11월 14일부터 SBS.FM의 'FM 1077'(오전1-3시)로 새출발 한 것이다. KBS측이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청취율이었다. 하지만 그의 열혈 추종자들은 이를 찹지 못하고 PC통신망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하이텔 통신망에는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되살리자'라는 토론방이 등장해 '유일한 전문음악 프로그램을 없애는 상업주의적 처사에 분노한다'는 등의 거센 비판여론이 형성됐다.

당사자인 그도 섭섭한 마음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방송할 수 있는 장이 다시 마련됐다는 것으로 자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닌 대중음악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류문화의 조작자들이 대중음악을 유행상품의 하나로만 받아들이는 한, 삐딱한 비줄의 감수성으로 충만한 '전영혁의 심야제국'은 깃발을 내리지 못할것 같다.

<황옥주·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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