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오바마, 혁명인가 향수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농부가 왕이 된다고 해서 그 왕국이 더 민주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는 100년 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말처럼,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 해서 미국이 금방 인종 평등의 천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흑인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들이 바라는 새로운 미국은 미국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이 아니라 부시 이전의 미국, 즉 원래의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변방’ 출신 대통령은 오바마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50년 전 케네디는 ‘아일랜드인과 가톨릭교도는 미국의 주류가 아니다’는 금기를 깨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의 당선도 유색인에 대한 미국 주류사회의 정치적 편견을 희석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실제로 케네디 이후 미국에서 가톨릭 정치인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았다. 2004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 존 케리도 구교도였고, 오바마의 부통령 바이든도 미국의 첫 구교도 부통령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오바마와 케네디를 겹쳐 봐야 보인다. 둘 다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배제된 변방 출신이라는 점, 젊고 매력적인 달변의 상원의원 출신이라는 점부터 똑같다. 케네디가 미국의 원대한 꿈을 펼칠 ‘뉴 프런티어’를 비전으로 내걸었듯이 오바마도 부시가 훼손한 미국의 꿈과 리더십의 복원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피부색과 성장 환경만 다를 뿐 인간적 조건과 정치적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오바마는 케네디의 환생이다.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무명의 일리노이 주의원 버락 오바마가 기조연설자로 간택된 것도 그가 미국의 꿈을 상징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바마는 가난한 흑인 학생이 하버드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되고, 일리노이 주의원까지 된 것은 다른 나라에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며, 또 자신처럼 웃기는 이름을 가진 혼혈 소년에게도 설 자리를 마련해주는 나라가 미국이라면서, 또 신이 미국에 내린 가장 큰 축복은 자기 같은 사람에게도 희망을 품게 한 것이라는 감동적 연설로 미국의 심금을 울렸다.

 이 연설로 ‘유리 구두’를 신은 오바마는 곧바로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이 되고, 상원 경력 4년 만에 상원 경력 36년의 조셉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대동하는 첫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08년 미국 대선의 키워드는 피부색도 아니고 선거 쟁점으로 부각된 이라크와 금융위기도 아니다. 그것은 50년 전 케네디가 일깨웠고 30년 전 레이건이 흥행시킨 ‘위대한 미국’에 대한 향수다. 흑인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믿는 많은 백인과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마저 오바마를 선택한 것은 지난 8년간 미국을 위대하지 못한 나라로 타락시킨 공화당 정권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며, 부시 정권이 잃어버린 미국의 꿈과 긍지를 젊은 오바마의 눈과 입술에서 예감했기 때문이다.

선거는 합법적인 복수다. 미국 국민은 부시 정권에 복수했고, 공화당의 시대도 끝냈다. 이제 관심은 오바마가 보여줄 새로운 세계적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클린턴보다 왼쪽이다. 오바마 외교의 이념은 강력한 도덕적 국제주의와 인도적 개입주의다.

20세기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 이념에 충실한 오바마의 외교가 세계 정치의 현실과 미국의 국가 이익 앞에서 어떻게 변질될지가 관건이다. 어쨌든 달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현실을 안고 등장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의 꿈과 그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인지, 아니면 근대 세계사의 총아였던 ‘미 공화국’의 쇠락을 예고하는 전조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