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아기’가 된 우리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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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계셨다. 고운 얼굴에 “아이구, 내 강아지”하며 환하게 웃음 짓던 할머니. 비쩍 말라버린 그 젖가슴은 언제든 만지작거릴 수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야단 맞을 때도 그 치마폭에 숨으면 해결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할머니가 변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억지 부리고, 식사를 끝내고 돌아서자마자“밥도 안 준다”고 투정을 했다. 엄마에겐 우울증이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곤 놀랐다.
장편동화 『똥싼 할머니』를 읽는 내내 돌아가신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이 책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주인공인 새샘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늙으면 노망이 나서 ‘벽에 똥싸 바른다’는 그 병”에 걸린 할머니 때문에 단란했던 한 가정이 겪는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고령화한 우리 사회에선 이제 흔한 얘기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 때문에 동화로선 대개 단편으로 다뤄지고 말던 이 소재를, 작가는 결코 훈계적이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그려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자란 새샘이 남매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시골에서 올라와 함께 살게 된 할머니는 아들인 아빠만을 찾으며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다.

그것이 치매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아빠는 효심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또 엄마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처지 속에서 괴로워한다. 새샘이도 친구들에 대한 창피함과 막연한 공포심에 할머니를 멀리한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를 요양원에 맡기자 할머니는 실종되는데 ….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완전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이제 ‘아기’가 된 할머니는 끝없는 보살핌과 사랑의 대상임을 새샘이 가족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여운이 긴 고학년용 동화. 절제된 문장과 흑백의 상징적인 삽화가 감동을 더해준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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