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라크戰은 시작부터 실패한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11테러 사건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려 깊고 신중한 지도자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고도로 통합되어 가는 세계의 일원으로서 당면하는 실질적 안보의 취약성 등도 신중하게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다. 미국은 어처구니없는 대응을 했다. 진지한 분석 과정도 거부하고 급하게 서투른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미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 예언대로 미국은 지금 난처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이라크전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차츰 사실로 향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날카로운 비난을 퍼부은 이 사람은 누구일까. 미국 정권 비판에 앞장서온 노엄 촘스키 같은 지식인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의 속내를 파헤친 『공격계획』의 대기자 밥 우드워드도 아니다. 바로 부시 대통령 밑에서 녹을 먹던 전 백악관 테러담당 조정관 리처드 클라크(53)다. 30년 동안 백악관에 머물며 세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클라크는 긴 호흡의 ‘내부자 시선’으로 9·11 이전과 이후를 분석한다.

‘부시 때리기’ 책이 또 한 권 나왔다고 시큰둥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이라크전의 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여러 시각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야 한다. 부시 행정부에서 ‘대(對)테러리즘의 황제’라 불렸던 클라크는 철저하게 미국과 미국민 이익의 시각에서 테러와 전쟁을 파헤친다.

“부시 대통령은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 이전에 알카에다의 위협을 방지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공격 이후에도 여전히 테러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정치적 입지만 강화했다. 또한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원리주의자와 급진 이슬람 테러리스트 운동만 불러일으켰다.” 테러 전문가다운 요점 정리다. 클라크는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테러 방비책을 마련하자고 여러 번 고언했지만 묵살 당한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분초를 다투며 긴박하게 돌아가던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3분 상황에서 시작하는 제1장 ‘백악관을 대피시켜라’부터 테러에 대처할 조언을 담은 제11장 ‘올바른 전쟁, 잘못된 전쟁’까지 클라크는 일관되게 부시의 이라크전은 시작부터 실패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덜컥 이라크를 침공하기보다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할 이념적 틀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돌아본다.

부시와 클린턴 대통령을 비교하는 대목에 오면 클라크가 왜 백악관 진영으로부터 ‘민주당을 돕기 위한 책략가란 소리를 듣고 있는지 알게 된다. 클라크는 부시를 “어리석고 굼뜬 돈 많은 애송이”라고 묘사했다. 반면에 클린턴은 독서가이자 치밀한 분석가며 예리한 관찰자로 표현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 시스템이 누가 대장이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걸 보여주는 내부자의 고발인 셈이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