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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相生정치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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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에 대한 기각 결정으로 두 달여 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탄핵 정국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혔다.

찬반 어느 쪽이든 이제 모두 그간의 앙금과 갈등을 말끔히 씻어내고 일상의 소임으로 하루바삐 되돌아가야 한다. 또다시 거리에서 자동차 행렬을 막고 촛불시위를 재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독선(獨善)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다양한 의견과 태도가 병립할 수 있다. 더욱이 의사당에서는 나라의 운명과 장래가 걸린 문제라면 성역없이 어떤 것도 토론과 표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될 게 있다면 절차상의 적법성.정당성 여부다.

반평생을 국회에 몸담아 오면서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나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탄핵안 처리를 강행했다는 비난보다는 국회법 절차를 무시한 국회의장으로 기록되는 것이었다.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란 국회에서의 모든 의사결정 절차를 결정함에 있어 기본적으로는 정당 간의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하되 그러한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국회법에 규정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민주주의란 목표의 지고지순보다 과정상의 소박한 정당성에 더 비중을 두는 가치체계이다.

목적과 이념의 주관적인 독선에 함몰돼 절차적 정당성을 외면하거나 배척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민주로 가는 위험천만한 지름길이 된다. 그간 국회에서의 탄핵 의결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헌재에서의 최종 결정을 회피하려는 일부의 시도에 대해 내가 일시적 여론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헌법에 명시된 대로 하자 없는 과정의 완결을 주장한 것도 민주주의란 바로 과정의 미(美)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내 평소의 철학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대통령 탄핵이라는 우리 역사상 초유의 민주주의 한 과정을 국민 모두가 역사기록에 남기게 됐다. 이 과정에 우리 모두는 어떤 교훈을 찾아내야 하는가?

탄핵의 최종 결정이 났다고 해서 그것이 없었던 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이 나라가 한발짝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이번 사태에서 정말 귀중한 교훈을 찾아 보다 성숙된 자세로 안정된 국정을 이끌어 가 주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정치인과 여야, 신.구세대 가릴 것 없이 독선과 오만이 빚어낸 국가적 소용돌이가 국민적 역량을 얼마나 소모시키고 국론분열을 초래했는가를 냉엄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언론도 냉정과 평형을 지키려고 과연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그리고 여기에 격발된 순박한 시민들의 과도한 참여 열기 또한 이제는 우리 모두 허심탄회하게 자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더 이상의 논전과 혼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달여 동안 이 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했던 탄핵사태를 그간의 입장 차이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교훈으로 삼고 후세의 귀감으로 살리려면 헌재의 최종 결정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고, 어느 편의 잘잘못을 새삼 추궁하는 속좁은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찬반 세력이 한데 어울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겹게 돌렸다는 동반자 의식을 가질 때 이번 탄핵사태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값진 교훈이 되고 나라 발전에 귀중한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난 만큼 그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우리 국민의 통합된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결정에서 승자와 패자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승자건 패자건 결국 우리는 대한민국 호(號)라는 한배를 타고 가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16대 국회에서 발생한 탄핵 문제가 같은 16대에서 마무리된 만큼 새롭게 개원하는 17대 국회는 탄핵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역사발전의 아픈 교훈으로 삼아 이제부터는 정말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 생산적인 정치로 한 단계 훌쩍 업그레이드하길 기대해 본다.

박관용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