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악 상황 대비 시나리오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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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은 아주 잘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외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일단 한숨은 돌렸으니 앞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전제하고 큰 그림을 그려놓아야 한다.”

베인&컴퍼니 한국법인 박철준(45) 대표가 생각하는 경제위기 대처법이다. 모든 상황을 가정한 큰 그림을 준비해야 위기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앞으로도 위기는 또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알 수 없다. 안다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하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로 한국 금융시장은 일단 웃었지만 미래는 점치기 어렵다. 미국발 위기는 상당히 심각하다. 이번 사태로 초부유층(Super Ultra Riches)이 사라졌다고 한다. 미국 유명 백화점의 최근 매출도 마이너스란다. 반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기가 2~3년 지속될 경우 한국이 과연 버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통화 스와프로도 유동성 위기가 쉽게 끝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이런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최악의 위기가 올 경우를 상정해 미리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상황별로 구체적인 전략을 담은 시나리오를 미리 짜둬야 한다.”

-외환위기 때보다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나.

“물론이다. 그때는 한국 경제에만 불이 났지만 지금은 세계 전체에 불이 났다. 소방서에서 불이 났고, 소방도로도 막힌 형국이다. 스스로 불을 끌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에 더 의존적인 한국의 불확실성은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자기 문제만 생각하면 되지만 한국은 미국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앞날을 예상할 수 있다. 보험도 최대한 많이 들어놓아야 한다. 다른 나라와도 더 많은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어야 하고, 국제통화기금(IMF)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등 한국 우량기업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기업의 부채비율도 아주 낮다. 한국의 기초체력이 이렇게 좋은데도 심하게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펀더멘털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펀더멘털이 좋아도 위기가 2~3년 지속된다면 한국은 버티기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답도 빨리 내놓아야 극복할 수 있다. 위기의 증가 속도보다 대응책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얘기한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한 대책’도 시나리오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동안 외국 언론과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를 타깃으로 했던 이유는.

“한마디로 한국을 불안하게 봤기 때문이다. 해외와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들 했지만 이보다는 한국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을 믿지 않았다는 게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고 강변하는데 외국인들은 ‘저 정도 가지고 넉넉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의구심은 또 생겨날 수 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상황별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위기는 역설적으로 준비된 자가 새로운 강자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내년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투자나 합병 등을 통해 강자로 올라설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정부든 기업이든 비상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베인&컴퍼니는 세계 2위의 컨설팅회사다. 박철준 대표는 1991년 이 회사에 컨설턴트로 입사해 17년째 일하고 있다. 2002년 이 회사 한국법인 대표, 2005년 사모투자 펀드 M&A 컨설팅 부문 아태지역 총괄대표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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