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작곡가 박재은 '현대음악 에스프리'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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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부분의 창작음악 발표무대가 연례적인 동인.그룹전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한 작곡가의 작품만으로 꾸며진 보기드문 공연이 열렸다.
지난 26일 정동극장이 의욕적으로 새로 선보인.한국의 작곡가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열린 박재은의 현대음악 에스프리.국내 공연장으로는 드물게 흑자경영을 해온 정동극장이 마침내 창작음악활성화에도 손길을 뻗친 것이다.
이날 선보인 박재은(40)의 최근작들은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독주에서 2중주.4중주를 거쳐 대규모 편성의 합창곡으로 꾸며져 이날 무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구성력에 크게 기여했다. 플루트 독주를 위한.정(靜).동(動)'은 플루트의 현대적주법을 실험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정신세계의 표현을 추구하는 작곡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
두대의 하프가 연주하는.아난타(阿難陀)여'는 오세영의 시를 하프 특유의 시적인 분위기로 차분하게 그려냈다.하지만 플루트와함께 여성작곡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악기가 바로 하프라는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 콜로르 현악4중주단이 연주한.열린 공간Ⅱ'는 작곡발표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4중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메조소프라노 윤현주의 열연이 돋보였던.세개의 노래'(이정우 시).가사 전달을 낭송에 가까운 읊조림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대가곡 특유의 극적인 재미를 더해준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소리(강권순).합창(안양시립합창단).타악기.테이프.무용(이승미)을 위한.어부사시사'(윤선도 시)는 전자음향과 생연주를 한데 결합한 라이브 일렉트로닉스 작품.뱃노래에등장하는 후렴구를 집요한 리듬으로 반복하는 부분 에서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엿볼 수 있었다.독주악기를 위한 짧은 소품 위주라는 여성작곡가의 전형에서 탈피,서사적인 대편성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려는 작곡자의 노력이 눈길을 끌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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