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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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 드리겠습니다.코펜하겐에 같이 다녀왔습니다.아리영씨는 밤이 황홀한 것을 처음 알았다 했습니다.오래도록 불감증에 시달려왔는데 새 세상을 봤다고 실토해 주었습니다.저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격으로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남자의 보람중 으뜸가는 것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네가.최고'라는 말을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듣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맥은 어머니의 마음이 조개껍질처럼 단단하고 거부적인 것을 깨달았는지 아리영과의 정사를 고백했다.마지막 칼을뺀 셈이다.
어느 외국 책에서 읽은 장면 한 토막이 생각났다.그것이 소설이었는지,에세이 종류인지 또는 누구의 작품이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그 대목만 유독 컬러영화의 한 신처럼 마음 구석에남아있는 것이다.
장소는 파리.매춘녀 집에 초로(初老)의 신사가 찾아온다.처음보는 손님이다.차림새를 보나,말씨를 보나 보통사람 같지는 않았다. 웃옷을 벗고 그가 손 씻으러 간 사이에 매춘녀는 호주머니속의 명함을 꺼내봤다..남작(男爵) 아무개'라는 글씨가 보였다.명함을 얼른 호주머니에 도로 넣은 매춘녀는 손 씻고 나온 남작에게 서둘러 일을 치르라며 일부러 호통치고 알몸이 되었다.매춘녀는 거친 말투와는 전혀 딴판으로 갖은 기교를 다해 얼렀다.
남작이 절정에 이르는 것에 맞추어 매춘녀는 그녀의 동굴을 죄며그의 귀에다 속삭였다.숨이 끊어질듯 애절한 목소리였다.
“아,이런 느낌,처음이에요! 정말 이상해요.” 크게 만족한 남작이 후한 팁을 내놓자 매춘녀는 한사코 사양했다.
“처음으로.여자'가 되게 해주신 분한테 어떻게 돈을 받겠어요.제발 부탁이니 제 감사의 뜻을 받아 주세요.” 남작은 그대로돌아갔다.
며칠 후 그는 마차로 그녀를 모시러 왔다.아내가 돼달라는 것이었다.상처한지 오래된 남작은 매춘녀를 정식 부인으로 맞이했다는 에피소드다.
앞뒤가 끊긴 채 그 대목만 을희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까닭은 남녀의 상관양식에 충격받은 탓인지도 모른다.
을희는 그런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남편에게 그같은 아양을 떨 일도 없었고,실상 그처럼 황홀한 절정에 오른 적도 없었다.구실장하고의 하룻밤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알찬 것이기는 했어도 동정(童貞)의 젊은 부하라는 부담감이 맘놓고 감미함에 취하는 것을 스스로 허락지 않았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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