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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선진국 되는 길, 인력 양성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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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중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서울대 공대 컴퓨터공학부는 최근 10년간 입학 정원을 120명에서 50명으로 크게 줄였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없어 해마다 정원 미달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2000년을 전후로 소프트웨어 학과의 정원을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소프트웨어 전공자들은 졸업 후 다른 직종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의료계·법조계·교육계·금융계 등 인기 있는 직종을 찾아 떠난다. 이런 현상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과연 포기해도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정보기술(IT)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모든 산업 분야에 스며들었다. 휴대전화·디지털 TV 등 IT 제조업은 물론이고 자동차·조선·항공기 등 기존 산업에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IT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K마트도 IT를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데 소홀히 한 탓에 기존의 시장을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반면 IT를 경영혁신의 도구로 적절히 활용한 기업과 정부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의 세븐 일레븐은 회사 전체 수익 중 절반 이상을 IT 서비스 분야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미국은 전투기 등 국방장비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한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체를 보유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자동차·선박·휴대전화·디지털 TV 등 주요 수출품의 경쟁력을 소프트웨어가 좌우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낙후하면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다행히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산업 트렌드 변화는 우리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선진국의 성역이었던 소프트웨어 핵심 기술을 모든 국가가 공유하는 움직임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검색업체 구글이 일전에 휴대전화 소프트웨어인 안드로이드의 핵심 기술을 공개했다. 이런 추세를 잘 타면 소프트웨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모든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 인프라인 인력 양성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정부는 초·중·고 교과과정부터 응용소프트웨어 사용법 위주의 단순 교육에서 탈피해 정보과학 원리 및 알고리즘 등 문제 해결력 배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서 소프트웨어 학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대학들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요를 교과과정에 반영, 그들이 원하는 인력이 배출해야 한다.

더불어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입한 종사자들이 빠른 기술발전과 산업 간 융합추세에 대응하면서 고급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의 개발도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정부·기업·학계가 합심해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다.

고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한국공개소프트웨어활성화포럼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