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현대 제철업 진출 不可' 합당한가-不可명분 약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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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동안 논란이 돼오던 현대그룹의 신규 일관제철소 건설이 정부정책당국의 불허입장 표명으로 사실상 사전봉쇄되고 말았다.정부측의 반대 이유는 공급과잉에 따른 제철소의 가동률 저하 가능성,고로(高爐) 생산방식의 문제점,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 심화등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 측의 주장과는 달리 고로에서 생산되는 고급 판재류를 중심으로 공급과잉이 아닌 공급부족이 심각히 우려된다.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철강재 장기수요전망을 근거로 2005년께에 가면 우리나라 철강소비가 포화점에 이르게 되고 현대그룹의 신증설 설비중 상당부분이 과잉설비로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정부출연연구소의 수요예측은 번번 이 실적치와매우 큰 오차를 보여 이미 신뢰성을 잃었다.
물론 수요예측은 빗나갈 수도 있다.문제는 정부가 이미 예측능력을 상실한 정부출연연구소의 전망을 근거로 공급과잉을 주장하고신규진출을 막는데 있다.정부는 얼마전 2020년 장기 청사진에서 향후 상당기간 자동차.조선.기계.전기전자등 철강다소비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해놓고 이번엔 2005년 이후 철강다소비 산업의 성장이 둔화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또 기존 고로생산방식에 의한 제철소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고로방식이 낡은 생산공법이라면 왜 광양제철 제5고로는 기존 고로방식으로 서둘러 허용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책당국자는 현대그룹이 제철사업에 진출하는 경우 수직계열화에 의해 계열사간 내부거래가 확대되고 불공정거래가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포항제철이 판재류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있는 현 상황에서 가격차별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업 진출은 냉연및 강관업체들이 기존 소재인 열연코일을 복수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독점체제에 의한비효율을 해소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철강산업은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따라서한 국가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다른 국가의 투자에 결정적 영향을주게된다.포항제철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선진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양제철소를 적기에 건설했기 때문이다.지금 일본에는 아직도 약 1천2백만 규모의 유휴설비가 남아있다.일본업체들이 이들 유휴설비를 폐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내에서 일관제철소 신증설이 없을 경우 2000년 이후에 예상되는 엄청난 수요증가를 기 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철강 5대 생산국이 되었다고 만족할 때가 아니다.부정확한 수요전망을 근거로 공급과잉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적극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고급 철강재 시장을 하루빨리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아야 하는 것이다.정책 당국자의 시야 가 좀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민간의 창의와 경쟁에 의한 시장경제체제의 효율은 아무런 비용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제철소 하나 건설하는 것도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이나 「요 란한」 경쟁력 10% 제고운동도 결국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郭 晩 淳 〈한국경제연구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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