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차업계 감원·감산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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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유럽 시장에서도 자동차가 안 팔린다. 영국·독일 등 15개 선진국으로 이뤄진 이 시장은 북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지만 최근의 소비침체로 시장이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은 지난해까지 연간 시장 규모가 1400만∼1500만 대.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5개 국은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200만 대가 넘는다. 그런 시장에서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연속 판매가 줄었다. 특히 8, 9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나 줄었다. 지난달엔 스페인(-32%), 영국(-21.2%)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판매 차량의 70%가 소형차인 이탈리아도 이 기간 6.5% 줄었다.

이에 따라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잇따라 감원과 감산에 들어갔다. 대중차 업체인 오펠·피아트·르노·포드유럽·도요타유럽은 지난달 감산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볼보·푸조-시트로앵은 이달 초 3000명의 인원을 줄이기로 했다. 도요타도 영국·터키 공장의 감산을 시작했다.

고급차도 한파를 맞고 있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30%가 넘는 BMW는 지난달 미국으로 수출이 계획된 2만 대의 차량을 긴급히 러시아·중국으로 판로를 바꿨다. 이 회사는 11월까지 3시리즈를 생산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 등에서 2만5000대를 감산하기로 했다. 다임러도 벤츠를 4만5000대 감산한다.

르노-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은 최근 “경제 불황으로 유럽에 심각한 불경기가 올 것이다.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우려했다.

GM유럽 칼 피터 포스터 사장은 오토모티브뉴스와 인터뷰에서 “유럽 자동차업체 대부분은 생산 감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내 공장을 폐쇄하는 최악의 경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부품공급협회(CLEPA)의 라스 홈비스트 회장도 “자동차업체의 감산으로 상당수 부품업체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선방한 현대차도 올 1∼9월 23만423대를 팔아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14%), 혼다(-12%)는 더 많이 하락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최근 해외법인 긴급 점검회의에서 “미국 금융위기 여파를 덜 받아 상대적으로 양호한 동유럽 등 틈새시장의 판매력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자동차산업 분석가들은 내년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JD파워포캐스팅은 내년 서유럽 자동차 시장에 대해 ‘명백한 붕괴’라는 말까지 사용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7~8% 감소해 1370만 대에 머물지만 내년에는 20년 이래 최악인 1240만 대(-9%)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 판매 전망에 대해 포드유럽과 도요타는 각각 12%,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형차에 강한 피아트도 5% 하락을 예상할 정도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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