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세포간 언어 해독하면 뇌 신비 풀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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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뇌 세포간에 서로 주고받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는 가설이 있어요. 그 언어만 해독하면 뇌의 신비는 순식간에 밝혀질 것으로 봐요. 나를 포함한 뇌 과학자들의 최종 목표이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 도호쿠후쿠시(東北福祉)대학 오가와 세이지(小川誠二·74) 박사. 세계 뇌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기능성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fMRI)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그가 9월부터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에 새로운 ‘연구 둥지’를 틀었다. 초빙 석좌교수로서다. 그를 22일 뇌과학연구소에서 만났다. 남들은 퇴역할 나이인 칠순을 넘겼으면서도 연구 열정은 뜨거웠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세계적인 석학 오가와 박사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뇌과학연구소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면 뇌의 시각 영역인 V1과 LGN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붉은 색)한다. 오른쪽 사진은 뇌를 위에서 아래로, 왼쪽 위·중간 사진은 파란색 선을 따라 뇌 영상을 잘라 단면을 본 것이다.이들이 2차원 영상이라면 아래 사진 3개는 3차원으로 만든 것이다. 오가와 박사가 개발한 fMRI는 이처럼 뇌의 활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뇌과학연구소 제공]


“뇌 연구에 fMRI 이외에 또 다른 필수 장비인 7테슬러 MRI(병원용은 1.5테슬러)와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 등 뇌 연구 시설이 뇌과학연구소만큼 잘 갖춰진 곳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20여 년의 ‘학문적 친구’인 조장희 박사가 소장으로 있어 더욱 오고 싶었다.”

-어떤 연구를 하려고 하나.

“뇌는 아는 것보다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뇌가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데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볼 때마다 그를 알아채는 뇌 부위도 각각 다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현재 그런 차이를 밝혀보려 연구 중이다.”

-뇌를 수술하지 않고 들여다 볼 수 있는 획기적인 영상촬영 장치가 나올 것으로 보나.

“기존에 있던 장비들의 성능을 약간씩 개량하는 정도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전혀 다른 기술을 이용한 장비의 개발은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형광단백질을 이용해 뇌 기능을 밝혀볼 수도 있겠지만 형광을 뇌 밖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게 한계다.”

-뇌 세포간 언어라는 게 무엇인가.

“뇌에도 네트워크가 있다. 뇌가 활동을 할 때 어떤 부위가 역동적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더구나 인간들이 언어를 가지고 의사를 전달하듯 뇌도 그런 어떤 언어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이를 ‘신호코딩’이라고도 한다. 그게 있다면 틀림없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조장희 박사와의 인연은?

“조 박사는 나를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추천해 되게 했다. 미 학술원 회원은 세계적인 업적을 내지 않은 사람은 되기 힘들고, 기존 회원이 추천해야만 한다. 조 박사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원형 PET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과학자로서 그동안 서로 학문적인 교류를 많이 해왔다.”

-대학에서는 응용물리학을, 대학원에서 바이오물리학을 했는데.

“대학원 지도교수가 어느 날 물리에 생물학을 접목하려고 하는 데 그쪽으로 연구 방향을 틀든가 아니면 다른 지도 교수를 찾아가 하던 연구를 계속할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지도교수를 좇아 전공을 바꿨다. 그게 내 인생에 새로운 방향을 열어줬다. 그 지도교수는 바이오 물리학 개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만큼 이끌어주는 사람이 중요하다.”

-일본은 과학자를 우대한다는데.

“그렇긴 해도 젊은 과학자들한테 돌아가는 연구비가 거의 없다. 상위 5% 정도만 연구비를 받는다는 보도도 있다. 일본도 연구비를 더 늘려야 과학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fMRI 개발자 오가와 박사는

뇌가 시각 신호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오가와 박사.

1980년대 말 MRI로 살아 있는 뇌의 활동 상황을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는 fMRI를 개발했다. 뇌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길여 길재단 회장은 그를 초빙하면서 연간 30만 달러씩 15년간 주기로 했다. 연간 3개월 이상만 근무해도 된다는 조건이다. 뇌과학연구소에는 조장희 소장실 맞은편에 소장실과 똑 같은 넓이와 집기를 넣은 연구실, 뇌과학연구소 근처 165㎡(50평)대의 아파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연봉은 조 박사와 같은 액수다. 파격적인 대우다.

한국의 교수치고 이만큼의 연봉을 받는 과학자는 그와 조 박사, 이길여암당뇨연구소 김성진 박사 등 세 명에 불과하다. 그는 뇌 시각 처리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길재단은 오가와 박사와 조 박사가 공동 연구를 함으로써 한국의 뇌과학 연구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 도쿄대 응용물리학(학사)▶미국 스탠퍼드대 (박사)▶미국 벨연구소 연구원▶일본 오가와뇌기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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