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참사랑 실천하고 떠나는 언더우드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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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대에 걸쳐 연세대를 통해 봉사해온 언더우드 일가가 한국과 작별한다. 언더우드 4세인 원한광 한.미교육위원회위원장이 올 가을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국에서 언더우드 가족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이유다. 개인재산으로 가지고 있던 집도 학교로 모두 헌납했다. 원씨는 재단이사직마저도 사양했으나 재단 측이 창립자의 후손이 없으면 안 된다고 통사정을 해서 할 수 없이 떠맡았다고 한다.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는 언더우드가를 바라보며 무한한 존경과 함께 아쉬움이 더하다.

언더우드 일가는 암울했던 시절,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빛을 전해주었다. 인도로 향하던 꿈을 접고 작고 가난한 조선을 찾은 선교사 언더우드는 열강의 틈에 끼여 쇠락해가는 대한제국의 말로를 지켜보며 경신학원.조선크리스천칼리지.성서공회.YMCA 설립 등으로 민족의 정신을 일깨웠다. 민족 최대의 수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연세대가 국학의 산실로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음은 전적으로 언더우드의 공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역사적 수난도 함께했다. 질곡의 한국 현대사 속에는 언더우드가가 흘린 피와 땀이 스며 있다. 2세 원한경 박사는 1949년 공산당 테러로 사랑하는 부인을 보내야 했다. 3세 원일한 박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고, 국제연합군 정전협상 수석 통역장교로 역사의 현장에 섰다. 언더우드가 3대는 이제 서울 합정동 외국인묘지공원에 잠들어 그들이 사랑한 한민족을 지켜보고 있다.

119년간 한국을 아낀 그들의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갚아야 할 위치에 왔다. 언더우드 일가처럼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를 보살피는 것이 그들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이들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교과서 수록 등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박애정신으로 한없는 사랑을 심어준 언더우드가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