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고, 불쾌하고, 메스껍다" 포로학대 강하게 비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으로 예정된 세계 인권 보고서 발표를 취소하는가 하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친미(親美)국가들마저 차례로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세계 인권 보고서=미 국무부는 당초 5일에 발표하려던 세계 인권 보고서 발표를 돌연 취소했다. '기술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국무부의 해명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7일자 사설에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워 인권 보고서 발표를 연기할 지경이 됐다"고 개탄했다. 미국은 매년 5월 초 전 세계 100여 국가의 '인권 성적표'에 해당하는 세계 인권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등 돌리는 친미국가들=미군의 포로 학대와 관련, 프랑스와 중국 등 미국의 이라크전 수행에 반대해온 나라는 침묵을 지키는 반면 친미국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인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0일 "우리는 전혀 이런 사실을 몰랐다"며 학대에 가담한 군인에 대한 일벌백계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다.

또 야당인 녹색당의 알폰소 페코라로 스카니오 당수는 다음달 4일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의 이탈리아 방문이 취소돼야 한다고 말했으며, 공산당은 부시 방문에 맞춰 '양키 고 홈'을 슬로건으로 항의시위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라크에 469명을 파병한 중남미 온두라스의 리카르도 마두로 대통령은 11일 "이라크 철수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동유럽의 친미국가인 헝가리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야당도 "이라크 상황은 도덕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라크에 주둔 중인 헝가리군(300여명) 철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에 128명을 파병한 포르투갈의 마누엘 두랑 바로수 총리는 이번 포로 학대 사건에 대해 "비열하고 창피스럽고, 불쾌하고, 메스껍다"고 규탄했다.

이라크에 1300명을 파병한 네덜란드에서도 집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D-66당의 당수 보리스 디트리히는 "어떤 일이 더 일어날지 두렵다. 우리가 이라크 주둔 연합군이 저지르고 있는 이런 일에 참가하는 것은 반대"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미 정부가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며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최원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