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체 회계 착시’ 바로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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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 선박 발주량의 절반 가까이(46%)를 끌어와 한 해 25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번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곧바로 세계 1, 2, 3위 회사다. 하지만 이른바 ‘회계 착시 현상’으로 업체당 부채비율이 최대 1500%를 웃돌아 대외신인도 하락을 우려해 왔다. 앞으로는 회계 규정을 바꿔 이런 고민을 덜 수 있게 됐다. <본지 10월 8일자 e3면>

금융위원회는 환율이 급상승하는 시기에 장사를 잘하면 오히려 부채비율이 올라가는 조선업계의 회계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22일 밝혔다.

파생상품 평가손익만 회계에 반영하던 회계기준을 바꿔 앞으로는 실제 받을 건조 대금의 평가손익도 장부에 기입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렇게 되면 환율이 올라도 환헤지로 인한 평가손과 실제 받을 대금의 평가익이 상쇄돼 장부상의 자본 금액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문제였나=조선업계는 선박을 수주하면 환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주액만큼의 환헤지를 한다. 그런데 근래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평가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대우조선·STX조선 4개사의 6월 말 현재 환헤지 평가손은 4조151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각 업체가 선박을 건조해 발주사에 납품하고 달러로 받을 결제대금을 은행에서 원화로 바꾸면 평가손은 눈 녹듯 사라진다. 문제는 환헤지 평가손만 회계에 반영됐고 선박 인도 후 받을 결제대금의 환차익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환율 급상승기에는 배를 많이 수주할수록 자본이 줄고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기현상을 겪어 온 것.

◆어떤 효과 있나=조선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조선협회의 강사준 경영지원부장은 “장부상 착시 현상 때문에 부채비율이 높아 경영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오해를 종종 받았다.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할 때 입지가 올라가고, 투자자에게도 올바른 회계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본금이 적은 업체들은 수주액이 늘어 자본잠식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당국의 조치가 충분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회계 변경안의 경우도 환헤지 평가손익이 부채로 잡혀 실제보다 부채비율이 100~200% 올라간다”고 말했다.

변경 회계기준은 선박이나 선박엔진을 만드는 조선업계뿐 아니라 해외에서 대형 토목공사를 수주하는 건설업 등에도 적용된다.

또 상장기업이나 비상장기업 모두 자체적으로 이런 회계기준을 채택할 수 있다.

금융위의 정완규 과장은 “기업들은 이번에 변경한 회계기준을 다음 달부터 정기보고서(분기·반기 포함)에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키코 같은 파생상품으로 손실을 본 500여 비상장 중소업체에 대해서도 파생상품 평가손익을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주석으로만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럴 경우 자본잠식이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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