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회고전서 만나 본 元老화가 유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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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추상화도 선.면.색을 기본으로 균형과 하모니,그리고 리듬을갖는 똑같은 그림입니다.음악과 비교해 보면 쉽게 설명이 됩니다.기존의 틀이 주는 따분함을 극복하기 위해 높은 음을 쓰듯 그림에서도 강렬한 색을 쓰는 것이죠.』 평생을 외곬으로 추상화에전념해온 유영국(劉永國.80.사진)화백은 「추상화=어려운 것」이란 일반의 선입견을 의식한듯 이렇게 운을 뗀뒤 『많이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게 추상화』라고 설명한다.
노대가의 설명치곤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어 다시 물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허허,그런거 잘 모릅니다.평론가들이 잘 알지요.』 -…? 『글쎄…,자유스러운 것이겠지요.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말입니다.누가 봐도 좋다면 좋은 것,그게 예술 아닐까요.』 보통 화가들은 구상에서 시작,추상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그는 20세때 일본 문화학원에 유학하면서 처음부터 추상으로 시작했다.이때 같이 추상을 한 사람이 김환기(金煥基)였고 둘은 우리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된다.
『선배들처럼 했다면 기껏해야 그들과 같아지는게 고작이었겠지요.그들을 극복하기 위해,그리고 새로운 사조에 흥미를 느껴 곧바로 추상으로 들어갔습니다.』 평자들은 그의 작품을 시기에 따라4시기,혹은 6시기로 구분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다.
『나이가 들면서 작품이 조금씩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요.그러나바탕은 하나도 달라진게 없어요.』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는 바탕이란 작품의 본질이다.강렬한 색상이나 소재도 여전하다.그는 산을 즐겨 그린다.산 뿐이 아니다.바다.나무.태양등 어릴적 추억이 묻어나오는 자연은 그가 즐기는 소재다.그를 서정적인 자연주의 추상화가로 부르 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생 추상이란 한 우물을 판데 대해 후회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시 태어나도 추상을 할 것』이란 말로 답을 대신했다.
가없는 예술세계에 대한 겸허함의 표현이다.다만 젊다면 설치미술은 해보고 싶단다.그러나 이도 추상을 위해 공간을 좀더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못박는다.
그는 말을 아낀다.말은 평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말이나 이론에 너무 밝으면 작품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작품수도 과작(寡作)에 속한다.
『한창때도 한해에 10점 하기가 바빴지요.어떤 작품은 1년 걸려 그린 것도 있습니다.』(열정과 고뇌속에서 방황하며 그린 이 작품을 가장 아낀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작품인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화단의 원로로서 그는 화가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좋아지고 훌륭한 후배들이 나오고 있는데 만족하고 있다.그러면서도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어린 충고를 잊지 않는다.
『화가는 뭐니뭐니 해도 색을 잘 다뤄야 합니다.부단히 노력해서 익숙해지는 방법밖엔 없습니다.예술에는 왕도가 없는 것이지요.』 앞으로 흔치 않을 유영국회고전은 오는 14일까지 호암갤러리에서 계속된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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