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도시환경의 세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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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우리는 산업화.정보화.도시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지난 한세기동안 우리나라의 도시화는 급속히 진행돼 지금 전국 인구의84%가 도시지역에 살고 있다.아마도 다음 세기초에는 90% 이상의 인구가 도시지역에 살게 되고,나머지 농촌 사람들도 도시서비스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도시들은 지난 개발연대동안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조그마했던 촌락들이 도시로 성장했고,대도시는 세계적 규모로 팽창했다. 프랑스의 파리는 이미 나폴레옹 3세때 지금과 같은 틀이잡혔고,미국의 워싱턴이나 뉴욕의 도시계획은 이미 19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이다.런던의 인구가 지금보다도 많은 7백만명에 이를때 서울은 고작 25만명 정도의 작은 도읍이었다.그 러나 지금서울의 인구나 규모는 이들 도시들을 능가한다.
이처럼 선진국의 대도시들이 수세기에 걸쳐 계획적으로 도시성장을 관리하고 기반시설을 다듬어온데 비하면 우리의 도시는 급조품이다.당연히 교통.주택.환경 등 여러가지 도시문제가 쌓이게 된다.그래서 소득수준은 올라가지만 대도시의 삶은 점 점 고단해지고 있다.출.퇴근 시간은 더욱 고생스럽고,오존경보는 섬뜩하다.
급한대로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해 왔으니 개성이 없고,경쟁력도 약하고,삶의 질이 떨어진다.
도시마다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경관과 스카이라인이 있게 마련이다.서울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고즈넉히 자리잡았던도시다.그래서 풍수사상을 근거로 집은 낮게 짓도록 규제를 받아왔다.그런데 지금은 산으로 기어오르는 재개발아 파트와 강변에 병풍처럼 둘러선 아파트가 우리의 시야를 가로 막는다.바라크같은획일적인 아파트가 압구정동.개포동.목동을 점령하더니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초고밀 초고층화가 진행되고 있다.도시지역은물론 시골에까지 번진 획일적인 고층아파트 위주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형적 도시성장의 표본이다.
주거밀도 또한 지극히 높다.특히 서울시내보다 변두리지역,그리고 위성도시의 밀도가 더 높은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지난해 중소도시는 물론 농어촌지역에 지은 아파트들이 주변 경관과도 맞지않게 평균 18층,용적률 3백15%가 넘는다.이 같은 고밀도 아파트 살이가 가져오는 심리적.사회적 억압과 폐쇄성,그리고 어린이들의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많은 병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경고한 바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도시는 계속 팽창하고 새로운 도시도 탄생할 것이다.주거지뿐 아니라 도로.철도.산업시설.공공용지가 계속 필요하다.이들을 모두 감안하면 2010년께엔 국토면적에 대한 시가지면적 비율은 현재의 4.5%에서 7%이상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된다.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다.
이제 앞을 보자.도시환경의 세계화가 필요하다.주택보급의 양적팽창에만 집착하거나 하드웨어의 공급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질을 따질 때가 됐다.소득 1만달러시대에 소득 3만달러시대를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
우리의 도시는 보다 개성있는 도시로 태어나야 한다.전통문화와휴먼스케일이 배어있고,이웃과 이웃,계층과 계층이 함께 할 수 있는 공생적이고 다양한 삶의 터가 돼야 한다.그리고 앞으로는 환경의 질이 미래 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모든 도시개발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개발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환경보전과 개발은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는 힘차게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 도시의 기상을 보여줬다.몇년 후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열리고,아시아경기가 열리고,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린다.그때 우리는 성숙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도시 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李建榮 〈국토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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