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20년 결산' 공연 갖는 최백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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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가수생활 20년을 결산하는 공연준비로 여념이 없는 최백호(47.사진)를 만났다.그와의 대화는 모처럼 중장년층으로 하여금 레코드가게를 찾게 만들었다는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서부터 시작됐다.세인들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 던 「가수 최백호」의 존재를 다시 부각시켜준 곡이지만 정작 본인은 발표된지 1년6개월만에 TV드라마에 편승한 인기에 대해 꽤 당혹스런표정이었다.
『내가 부른 것보다 탤런트가 불러 알려졌으니 가수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드라마에 몇번 나온 다음,그것도 전곡이 아니고 탤런트가 극중에서 두어소절 흥얼거린 것에 불과한데 주문량이확 치솟았다.남들이 「제2의 전성기」운운하며 부 러워하는데 내심 창피스럽다.』 -어쨌든 인기가 있다는 것은 노래가 좋기 때문일텐데.
『나이 지긋한 분들이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가사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가령 「도라지 위스키」란 표현이 나오는데 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은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는 말이다.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 악하기 이를데없는 60,70년대 국산 양주인데 당시에는 다방에서 팔았다.』비단 『낭만에 대하여』가 아니더라도 데뷔곡 『내마음 갈곳을 잃어』이후 줄곧 풍부한 서정어린 노래들을 불러온 최백호에게선 시인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그가 노랫말에 쏟는 정성은 지극하다.
그는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를 쓰면서 도라지 위스키가 지금도생산되는지 주류협회에 직접 문의해 보았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사를 주의깊게 듣지 않는 것 같다.예전과 달리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이해는 가지만 아쉽다.나는 현재의 위치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그러면서도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노래로 만들어 왔 다.지금의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세월.나이.그리움 같은 것이다.이 나이에 새삼스레 이별이나 사랑을 노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이런 이유로 그는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신 입영전야』를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다.『입영전야』는 군에 가는 친구를 보내는 젊은 심정을 노래한 그의 히트곡이다.
-요즘 가요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은 좋은 노래도 많이 나오는데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다.요즘 방송을 보면 노래도,복장도 전부 흑인음악 일색이다.그것도 음악의 한 형태지만 너무 획일적이고 10대 취향으로만 흐르는데 이를 조장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성인들은 「들을 노래가없다」고 말할 정도로 가요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가수생활 20년을 맞는 소회는.
『「영일만 친구」이후 인기가 떨어질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로표현할 수 없다.절벽을 거꾸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즘와서 비로소 가수가 천직이란 생각이 든다.예전에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했을 뿐이지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 도 없었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노래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년의 자화상』이라 이름붙여진 최백호가 20년만에 처음 마련하는 콘서트는 11월2일부터 4일까지서울문화일보홀에서 열린다.
글=예영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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