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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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대미술관이 주최하는 특설 주부강좌 「역사대학」에 수강 신청을 한 것은 나선생의 스피치를 들은 며칠후의 일이다.
명색이 대학의 사학과를 나왔지만 고대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게 스스로 어이없이 여겨진 탓이다.
중국 북동부.일정때 「만주(滿洲)」라 불린 그 풍요한 대평원은 고구려 땅이었다.고구려 이전엔 부여(扶餘),그 이전엔 고(古)조선,그 이전엔? 예맥(濊貊)은 하나의 고대 부족국가였는가? 아니면 예와 맥은 딴 나라 딴 부족이었는가? 그 강토는 어디였는가? 상대(上代)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의 역사는 수수께끼 투성이었다.
한.일 고대교류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캄캄했다.왜섬은 일찍이 우리 땅이었다 한다.언제부터 얼마만한 조상들이 왜 건너갔는가.
그것이 어째서 각기 딴 나라가 되어왔는가.
그런 실질적인 문제들을 알고 싶었다.
개강날,교실 안은 화사한 첫봄 차림의 여인들로 가득했다.
을희의 옆자리에 앉은 두 여인.
눈여겨 다시 쳐다보게 될 만큼이나 뛰어난 미모의 30대였고 또 하나는 가무스레한 얼굴과 유난히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의 여주인공이었다.40대 후반의 가정주부로 늦깎이 화가 지망생이라고자기 소개를 했다.이글이글 안에서 타오르는 의욕 같은 것이 을희를 압도했다.
30대와 40대.여자의 전성기다.
『…참 좋은 나이지.』 「갓 마흔」이라던 을희에게 고교수가 한 말이다.그 「참 좋은 때」를 을희는 내내 혼자 지냈다.
『결혼은 하셨어요?』 미인에게 물었다.
『네.』 뜻밖이었다.미혼여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기혼」과 「미혼」을 을희는 거의 어김없이 구별할 수 있었다.미혼여성에게는 기혼여성에게서 찾을 수 없는 말간 발랄함이 있고 덜 영근 복숭아같은 풋풋함이 있다.일상의 때가 묻지 않은 정갈함이랄까 매임 없는 밝음이랄까….
이 여릿여릿한 미인은 그런 것을 느끼게 했는데 기혼이라 해서또 한번 바라보았다.
세련된 매너와 감미한 눈매.하기야 미혼여성은 가짐직하지 못한매력이다.
언뜻 큰며느리 생각을 했다.웃을 때 한쪽 뺨에 살짝 패는 보조개가 눈에 띌 뿐 보통 얼굴,보통 재능의 보통 여자다.
살림솜씨만 여물다면 큰며느리 감으로서는 차라리 안성맞춤인지 모른다. 큰아들 맥(貊)이 총각 때 재미삼아 사주를 본 적이 있었는데 미인 아내를 얻는 수라 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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