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미술관 ⑦ 관객 참여 잠실운동장 설치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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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꾸며진 ‘컨테이너 갤러리’ 중 ‘100개의 알 수 없는 방’을 관람하고 있다. 시민들이 기증한 사진을 재가공해 전시한 작품이다. 이곳에서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진행되는 30일까지 공공예술작품으로 꾸며진 10개의 컨테이너가 전시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만 좀 사! 이건 아까 골랐던 물건이잖아. 하긴 돈 내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 까르르~.”

17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쇼핑카트를 손에 쥔 두 명의 여중생이 물건 고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잠실운동장에 대형 마트는 없다. 이들이 쇼핑을 즐기는 곳은 주경기장 앞에 놓인 파란색 컨테이너 안. 내부가 가상의 쇼핑센터로 꾸며진 컨테이너다.

벽은 상품 실물 대신 상품 전시대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학생들이 카트를 끌며 안으로 들어서자 카트 위에 놓인 모니터에 상품이 나타났다. 핸드백·구두·귀걸이·청바지 등이 나타날 때마다 이들은 구입 버튼을 눌렀다. 계산대 앞에 도착하자 점원 역할을 하는 안내원이 영수증을 뽑아준다. 학생들이 받은 것은 이들이 고른 물건 24개의 그림이 인쇄된 영수증이다. 물론 실제 돈이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이 컨테이너의 이름은 ‘이미지 영수증’. 이 안에서 쇼핑을 즐기는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공예술작품이다. 상품의 기능이나 용도보다 이미지가 소비자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대사회의 소비 풍토를 성찰해 보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지, 부정적으로 볼지도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서혜림(15·정신여중 3년)양은 “요즘 문화를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면서 “여기서는 용돈 걱정 없이 물건을 고를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작품 주인공이 된다는 게 가장 신난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갤러리 중 하나인 ‘형제애의 도시’. 관람객들이 컨테이너 내부 벽이나 옷에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낙서로 남겨 완성하는 작품이다.

◆시민 참여 미술 공간=서울디자인올림픽이 진행되는 30일까지 잠실운동장에는 ‘이미지 영수증’을 비롯한 10대의 컨테이너가 둥글게 배치돼 관람객을 맞는다. 스티커를 손바닥만 한 종이에 붙여 내 모습을 표현하는 ‘오브-라-다, 오브-라-디’, 터치 스크린 위에 사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당신의 흔적을 남기세요’, 80가지 전자음으로 작곡을 해보는 ‘진 바이 진’ 등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시민들이 만드는 그림과 음악 한 점 한 소절은 계속 축적돼 각각의 컨테이너를 구성하는 작품 요소가 된다.

전시를 기획한 이재준 감독은 “모든 작품은 시민들이 조금씩 채워줘야 완성되도록 만들어졌다”며 “모두가 함께 예술 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미술·음악·건축 등과 대중의 경계를 허무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흩어져 있던 컨테이너가 한자리에=컨테이너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시내 대형 마트 10곳에 흩어져 있었다. 이 기간 각각의 컨테이너를 맡은 작가들은 개별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쇼핑을 하러 나온 시민들이 자유롭게 컨테이너 안을 드나들며 제작 과정을 즐겼고, 때로는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시민의 손길이 닿은 컨테이너들이 10일부터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 전시의 이름은 ‘De:place Re:place’로 지어졌다. 분산된 자리에 있던 직육면체들이 자리를 옮긴 뒤(De:place), 한 곳에 둥글게 모여(Re:place) 설치미술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재준 감독은 “각 컨테이너엔 영등포·양재·창동 등 서울 각지 사람들의 발길이 기본적으로 배어 있다”며 “다른 지역 주민과 작품을 통해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욱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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