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 더 얼어붙을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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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26면

지난주 수도권 집값은 송도신도시 등의 개발 호재가 있는 인천을 제외하고 대부분 하락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0.38% 떨어졌다. 주간 하락률로는 2003년 10·29 대책 이후 가장 컸다.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거나 경기침체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져 급매물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대출 축소 우려

집값 하락세가 멈출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서울 강북 지역의 아파트값도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주택 시장 전체적으로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집값을 좌우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아직 바닥을 논하기 이르다는 게 대세다.

2002년 이후 들불처럼 번진 집값 오름세의 불쏘시개는 저금리였다. 각종 가수요와 투기수요를 묶는 규제가 도입됐지만 활활 타오를 때는 소방수 역할을 못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비로소 불길이 잡혔다. 지금은 어떤가. 3년 고정형 대출금리는 최근 연 8.60~10.10%에 이른다. 과거 6~7%대와 비교해 이자부담이 크게 늘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대출 한도 제도는 주택시장으로 흐르는 돈줄을 가로막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세가 완화되더라도 투자상품으로서 주택의 매력은 반감돼 있다.

특히 글로벌 신용경색의 여파로 국내 은행들은 건전성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이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높여야 할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자산을 줄이거나 자본을 늘려야 한다. 이 중 자본을 늘리는 것은 주식·채권 발행 여건이 급격히 악화돼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자산을 줄이는 길밖에는 없다. 대출을 늘리기보다 오히려 단계적으로 회수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수급 측면에서도 집값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16만여 가구의 미분양이 쌓여 있고 신도시 공급이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시장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자산시장의 폭락을 불러온 금융폭탄의 뇌관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시장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미부동산협회(NAR)에 따르면 신축 주택 재고는 2년 전 60만 호에서 8월 말 현재 40만8000호로 감소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신축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NAR은 미국의 중간수준 주택 가격이 내년 1분기 19만9100달러로 바닥을 찍은 후 2분기부터 완만한 회복세를 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반등 시점을 이보다 늦춰 보는 전망이 많다. 쏟아지고 있는 차압매물을 소화하는 데 2~3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대출 심사 역시 까다로워져 주택 수요가 늘어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의 시장전망기관인 마켓오러클은 6월 말 보고서에서 케이스·실러지수가 2010년 말까지 2006년 7월 정점 대비 30%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20개 대도시 주택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S&P/케이스-실러지수(2000년 1월=100)는 정점을 기록한 2006년 7월 206.52에서 지난 7월 166.23으로 19.5% 하락했다. 평균을 훨씬 웃돈 하락률(최고치 대비)을 보인 도시는 피닉스(34.4%)·LA(29.7%)·샌디에이고(31.2%)·샌프란시스코(28.2%)·워싱턴DC(22.1%)·마이애미(33.5%)·라스베이거스(34.3%) 등이다. 뉴욕(10.6%)·보스턴(10.9%)·애틀랜타(8.2%) 등은 하락률이 10%안팎이다.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 부동산 담보 대출이 한국 금융시장을 흔들 것이란 경고도 나오고 있다. 조만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000년 이후 급증한 가계대출의 47%(307조원)는 주택담보대출이고 이 중 90% 이상이 변동금리 상품이어서 가계소득의 하락과 이자율 상승이 지속되면 연체율과 부도율 증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주택담보대출의 건전성은 차입자가 갚지 않을 때 담보를 처분해 ‘원금+이자’를 회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로, 대출액이 주택가격에서 얼마나 되는지를 의미한다. 국내 은행의 LTV 비율은 지난해 말 47.9% 수준으로 미국·영국 등의 70~80%에 비해 매우 낮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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