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무뎌진 公正거래법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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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이재훈 기자 = 서슬 퍼렇던 공정거래법의 칼날이 결국 많이 무뎌졌다.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2일 당정 협의 결과 민감한 조항들 대부분을 일단 보류하거나 완화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거래 차단을 위해 선진국 못지않은 엄정한공정거래법을 만들겠다던 공정거래위원회의 당초 의욕이 다소 무색해진 셈이다.대기업 채무보증의 완전 해소,친족독립경영회사 제도도입,부당공동행위에 대한 포괄적 금지조항 신설 도입등은 공식적으로 무산됐다.
또 부당 내부거래 범위에 자산.자금거래를 포함시키는 문제라든지 효율적인 법집행을 위해 도입키로 한 이행강제금 제도와 긴급중지명령제등 나머지 몇몇 중요한 현안들은 아직 결론을 못냈지만퇴색되거나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좋았으나 워낙 높은 「현실」의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재계의 반발은 당연하다치더라도 여당과 심지어 재정경제원.통상산업부.법무부등 관련부처들도 곳곳에서 제동을 걸었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워 범정부적으로 기업지원 정책을 내놓는 판에 이처럼 급격한 제도개혁으로 기업에 충격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반론이었다.물론 여기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의부담도 있었다.
이와 함께 공정위도 의욕만큼 준비가 따르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이번 개정안은 지난 3월 김인호(金仁浩)위원장이취임한 이후 구상해 5월부터 불과 2개월여의 작업끝에 탄생했다.「대의명분」만 믿고 서두르다보니 재계에 대한 설득 과정이나 관계부처 협의 과정등이 매끄럽지 않았고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실제로 개정안중 상당부분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의 반대논리에 공정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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