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방향 잘못 잡은 언론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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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예상대로 언론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언론개혁의 초점은 신문사의 소유 지분 제한에 맞추어져 있다. 여소야대의 16대 국회에서는 이런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수면 아래서만 논의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열린우리당이 이끌어가고 민노당이 뒤에서 밀어준다면 언론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충고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신문사의 소유 지분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사의 소유 지분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특정 매체의 여론독점으로 말미암아 의견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라야 소유 지분의 제한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신문들이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의견 다양성 보장을 위해 언론사 소유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수신문들이 여론을 독점하고 있거나 사회 전체의 의견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적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매체도 많다. 특히 진보적 관점에서 보수신문을 비판하는 방송과 인터넷매체는 영향력 면에서 이미 보수신문들을 능가하고 있다고 하겠다. 17대 총선에서 보수신문들이 한나라당을, 공영방송과 진보신문들이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총선 결과는 어떠했는가? 정당득표율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35.8%를 획득했고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양당은 합쳐서 51.3%의 지지를 얻었다.

이번 총선의 정당득표율에서 보듯이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을 지지한 진보성향의 유권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달리 말해 진보신문을 구독하는 독자와 앞으로 구독할 가능성이 큰 잠재적 독자를 합친 숫자가 1000만명을 웃돌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대거 17대 국회에 진출했으므로 진보신문들은 자신들에게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줄 취재원층을 충분히 확보하는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보수신문들의 지배적 시장점유율이 문제라면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질 좋은 진보신문을 만들어 독자 수를 늘리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추어졌다.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고품질의 진보신문을 왜 마다하겠는가? 정치의식이 뚜렷한 진보성향의 독자들이 경품에 눈이 멀어 고품질의 진보신문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이 논조뿐 아니라 정보의 품질을 놓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신문개혁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진보신문은 보수신문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인한 반사적 이득에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고품질 신문을 만들어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언론개혁이 반대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보다 강력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정치적 승부수로 인식된다면 상생의 정치는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언론개혁이 몇몇 보수신문을 겨냥한 표적개혁으로 그친다면 그 정당성을 잃을 뿐 아니라 정치적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편파방송 시비에 휘말려 있는 공영방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언론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은 공영방송이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시장점유율 15% 이상의 전국지를 소유 지분 제한의 대상으로 삼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15%를 내세우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여론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던져본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률 15% 이상을 올리는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의 소유 지분 제한도 검토하라는 요구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