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美·中관계 속 실리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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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핵보다 대만 독립이 향후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더 큰 위협요인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국 학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최근 중국 국무원 산하의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중.미 관계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나의 주제발표 후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었다.

중국과 미국이 상호 현안에 대해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중.미 관계는 한반도 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사려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대만 독립 선언에 대한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심지어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를 이용해 이를 시행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도 언급되고 있다. 중국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고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미국 하원의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의 대만 정책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했다. '대만 관계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할 만하다.

첫째, 대만 관계법의 근본요소는 '대만 안정'임을 강조했다. 이는 대만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천수이볜(陳水扁)에 대한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둘째, 미 정부는 처음으로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이 단독으로 현상유지(status quo)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반대하며, 중국의 무력사용 가능성을 단지 허세(empty threats)로만 여긴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 초기에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다고 천명한 입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대만에 대한 태도 변화는 중국이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에서 보다 적극적인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중국은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등 일련의 고위급 인사들의 미국 방문을 통해 대만 독립 반대 입장을 확인한 반면, 미국을 대신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주문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이 동북아에서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 하고, 미국의 군수산업은 방대한 군비 증강을 원하며, 또한 미국이 미사일 방어체제(MD) 등의 계획에 대해 차질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가 동북아의 평화를 해칠 것을 우려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는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요사이 미국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과 일반 국민의 인식 변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제1당인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의 자체 설문조사 결과 당선자 130명 중 '중국 우선'이라는 답변이 반수를 훨씬 넘는 63%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80%가 넘는 일반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위상과 역할이 축소되고 있고 북한 핵문제나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미국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여 북한 핵문제 해결을 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움직여 대만 독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양국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그들의 막후 절충과정에서 우리의 이익이 저해될 수 있음을 역사적 교훈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불필요한 편견을 버리고,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리 외교를 펴는 슬기로움을 보여주기 바란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베이징대 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