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 국방 경질 땐 이라크 정책 실패 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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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을 둘러싼 핵심적인 관심은 세가지다.

먼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거취다. 이는 단순히 주무 장관이 책임 여부를 넘어 조지 W 부시 정권의 재선 성패와도 연관되는 문제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해온 이라크 정책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럼즈펠드 장관을 경질하면 이라크 정책이 실패했음을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과 민주당 지도부가 럼즈펠드의 해임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부시 대통령, 당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정치적 압박인 셈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부시 대통령이 럼즈펠드 장관을 밀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을 신임한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게다가 미 국민 여론도 사임 반대(69%)가 찬성(20%)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만일 포로 학대가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미군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저질러진 범죄고, 그 원인이 포로들의 인권을 외면한 미 국방부의 강경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럼즈펠드의 사임은 불가피해진다. 그런 상황까지 몰리면 부시 대통령의 재선도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정책이 변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이미 변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강조하던 건 옛말이고 어떻게 해서든 유엔과 나토 등 국제기구를 끌어들여 책임을 분담하려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일단 이라크 국민을 달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들에 미칠 파장도 관심거리다. 미국에 '입속의 혀'처럼 굴던 일본조차 재빨리 유감을 표시했을 정도로 동맹국들의 분위기는 심상찮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우리가 전쟁을 반대한 게 역시 잘한 일"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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