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대북 지원 방식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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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기아에 직면한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9월 초 세계식량계획(WFP)이 긴급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에 최대 60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을 요청한 데 이어,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들까지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의 대북 지원이 차일피일 늦어지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식량 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 추진할 것을 주무 부처 장관에게 권고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번엔 종교계 지도자들이 지원을 호소했다. 법륜 스님, 김명혁 목사 등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은 대북 식량 지원 및 개발 지원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여 10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그 결과를 국회와 통일부에 전달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아사 상태에 놓인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6대 종단이 지원에 앞장선 이래 처음 있는 종교인들의 집단적인 행동이라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종교인들의 대북 지원 주장은 그간의 논의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즉 20만t 의 식량 지원이라는 긴급 구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차제에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북한 경제개발을 위해 국가 예산의 1%를 기금으로 적립하자는 데 교계의 지도자들이 뜻을 같이한 것이다. 구체적인 논의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사실상 대북 지원에 있어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2004년 봄에 발생한 용천 재해의 경우와 같이 일회성 지원으로 해결될 사안이 전혀 아니다. 북한전문가라면 매년 되풀이되는 식량난의 근본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닌 구조적인 경제난에 기인하며, 외부의 도움 없이는 근본적인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긴급 구호에서 개발 지원으로의 전환 필요성은 국내외 전문가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북한 당국도 개발 지원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2004년 여름 북한 당국은 통상적인 유엔의 통합지원절차(CAP: Consolidated Appeals Process)를 거부하고, 북한 내에 활동하는 WFP와 국제 NGO들에게 모든 인도적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지난 시기 대북 지원의 가장 큰 문제는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원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며, 2002년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진 이후에는 남남갈등의 빌미가 됐다. 긴급 구호와 달리 개발 협력은 중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추진되며, 그 과정에서 보다 많은 정보 및 자료의 공개, 현장 접근성의 강화 등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상대적으로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개발 협력의 성격이 강한 국내 NGO들의 보건의료와 농업개발 분야의 구체적인 사업들에 대해 단 한 차례도 퍼주기란 지적이 없었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2002년 초 중앙일보는 정부 예산의 1%를 대북 지원에 쓰자는 미래 지향적 제안을 한 바 있다. 이번 종교계 지도자들의 제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올해 정부 예산은 약 175조원이다. 예산의 1%는 1조7500억원이며, 이를 10년간 모으면 17조5000억원이라는 거금이 조성된다. 만약 매년 이 금액의 절반을 북한 주민의 빈곤 해소를 위한 개발 협력에 사용한다면 10년 뒤 북한 주민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

정부 입장에서도 매년 되풀이되는 긴급 구호성 지원 요구를 무한정 들어줄 수도 없다. 이제는 북한에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때다. 개발 지원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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