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연기자 유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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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KBS1 일일연속극 『사랑할 때까지』에서 외화번역가 오영진으로 나오는 유혜리(32)를 보면서 성인영화 『파리애마』를 떠올리기는 쉽지않다.
올케들에게 아픈 소리를 해대는 까탈스런 시누이로,친구처럼 지내던 남자와 밀고 당기다 결국 결혼하는 히스테리컬한 노처녀로 나오는 그의 연기에는 이제 원숙미마저 배어있다.
「에로영화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우리 현실에서 이런 그의 이미지 변신은 보기드문 일이다.그것은독하게 마음먹고 연기인으로 거듭 나겠다는 노력의 결과였다.
『상황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표정 하나,손짓 하나,호흡 하나에도 주인공의 그것을 많이 형상화시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죠.그래도 파트너(홍륜의 분)가 워낙 잘 받쳐주는 덕분에 훨씬 수월해요.』 연기자로서의 그의 「끼」는 생활에 부대끼는 아낙을열연,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장선우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통해 이미 검증받은바 있다.
그 뒤 연극 『게팅아웃』『열개의 인디언인형』『짜장면』과 영화『재즈바 히로시마』『꼬리치는 남자』,그리고 TV드라마 『적색지대』『길』등에서 그녀는 차근차근 연기력을 불려나갔다.
『영화는 좋은 장면 하나를 잡기 위해 몇개월이고 집중할 수 있는 반면 TV는 한정된 시간안에 자기 역량을 모두 표현해야 하는 차이가 있어요.그래서 아무래도 TV연기를 하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이제 연기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말일까.야성적 이미지 마저 분출하던 그의 고혹적 눈매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그윽하게 가라앉았다.
연극공연중 만난 이근희씨와 94년 분당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남편과 서로의 연기에 대해 자주 토론한다고 한다.
『그이는 왜 최대한으로 그 역을 살리지 못했느냐고 질책하곤 해요.연극적인 분석이죠.하지만 저는 절제해야 더 돋보이기 때문이라고 응수하죠.절제하는 내면연기야말로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는 27일부터 방송되는 MBC 일요가족극장 『간이역』에서 아들과 남편을 위해 유난을 떠는 억척주부를 맡게 된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지 기대해보자.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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