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쓰레기를 태우는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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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근처에 학교 운동장이 있다는 것은 새벽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운동장에 나갈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운동장에 있는 긴 의자와 그 주변,운동장 구석 땅바닥에 음료수병.술병.깡통.과자봉지등이 널려있는 것이다.새벽공기는 기분좋게 느껴지지만 쓰레기를 보면 여러가지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오랜 교직생활 끝에 얼마전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나는 교육자출신답게 「그 마비된 도덕성에 경종을 울려주리라」생각했다.그래서 어느날인가 직접 나와 계도해야겠다고 작정했다.그러나 그것은생각만큼 실천이 잘 안되었다.그렇게 며칠을 보내 고 어느날 학교운동장에 나갔다.그런데 그 많은 오물이 말끔히 없어져버린 것이 아닌가.나는 의아해 운동장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그런데 운동장 저쪽 구석에 있는 소각장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버려진 오물을 치우는 그 선행자가 누구일까 궁금해 살그머니 다가가 보았다.
소각장 가까운 곳으로 가니 어둠속에서 『어! 교장 아닌가!』하는 사람이 있었다.목소리를 듣고 그가 누군지 곧 알아냈다.그는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행정공무원.시의원등을 지내고 은퇴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의 친구였다.최근에는 아침 일찍 테니스를 쳤는데 그만 허리를 다쳐 치료 받고 있었다.그런 그가 언제 회복되었는지 다시 나와 아무도 없는 어두운 운동장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청소를 했던 것이다.
쓰레기를 들고있는 그를 보자 계도를 해야겠다던 딱딱한 마음이눈녹듯 사라지고 갑자기 마음이 환해졌다.몸소 먼저 빗자루를 들고 나선 그를 보자 그동안의 내가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자네였구나! 역시 자네는 달라.자네는이 학교의 무급 청소원이네.』우리는 아침공기가 울리도록 함께 웃었다.
황정덕 경남진해시여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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