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세대差 '세계 최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세대 병사들은 일선에서도 삐삐까지 차고 다닌다는 지적이 최근 있었다.장성출신 국회의원이 국감자리에서 한 말이니 지어낸 우스갯소리는 아닐 것이다.갓 입대한 병사가 보초를 서다가 여자친구로부터 삐삐로 호출받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고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그러나 일촉즉발의 남북 대치상황을 놓고 보면 결코 웃어 넘길 일만은 아닐 것이다.아닌게 아니라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으로 군은 물론 나라 전체가 초긴장 상태인데도 탈영사건.총기난사사건을 잇따라 일으키는 판이 니 신세대문제는 단순한 군기문제 차원이상의 폭넓은 성찰이 요구되는 과제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은 어느 시대.어느 사회에나 있다.
또 시대변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세대차이와 갈등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 심화됐다는 점 또한 상식이다.어떻게 일선에서 삐삐까지 차고 다닐 수 있느냐며 기성세대들은 혀를 찼 지만 우리 못지않은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한 일선 근무 병사가 후방에 대고 전화로 피자를 주문한 사실이 바로 얼마전 해외토픽으로전해진 바 있다.럭비공같은 생각과 행동도 젊음의 특성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세대차이및 갈등 혹은 신세대문제는 그 정도나 성격에 있어 이런 일반적인 현상의 범주를 뛰어넘는다는 지적이 있다.그 하나로 지난해 6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세대차이를 계량적으로 분석해 발표했던 미국 미시간대 로널드 잉글하트교수의 지적을 들 수 있다.잉글하트교수는 각국의 문화변동을 첨단의 계량적 방법으로 분석해 「문화변동 유형론」을 정립한 학자다.그의 발표에 따르면 연구대상 43개국 가운데 한국은 세대간의 가치관차이가 가장 큰 나라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풍요.남녀의 역할.평등등과같은 탈(脫)물질적 가치에 대해 유럽의 1920년대생은 +25의 반응을 보인데 비해 60년대생은 +48의 반응을 보여 그 세대차가 23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한국인의 경우 20년대생은 -40,60년대생은 +30의 반응을 나타내 그 편차가무려 70포인트나 됐다.잉글하트교수는 이는 세계 최고의 세대차이며 이같이 큰 세대차이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그저 돌출적 행동을 나타내면 준엄하게 꾸짖거나 개탄하는게 고작이다.사회적 문제로 논의는 커녕 기껏해야 정치권에서 권력다툼의 소재로 세대문제를 제기한게 고작일 뿐이다.이 런 수준이니세계 제1의 세대간 가치관 차이가 왜 빚어졌는가에 대한 공통의인식은 물론 갈등해소책도 마련됐을리 없다.
세대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는 대책으로 흔히 제시되는게 가정교육의 강화다.이는 가정이 마음만 먹으면 신세대를 올바로 교육할 수 있고 세대차이도 이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과연 우리 가정에 그런 능력 이 있는 것일까.답은 『아니오』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지난 81년 만15세이하 자녀를 둔 한국.일본.미국.영국.프랑스.서독등 6개국의 남녀를 대상으로 자녀교육에 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당시의 자녀가 바로 현재의 신세대다.조사결과 문제는 바로 부모들에게 있음이 드러났다.
우리 부모들은 다른 나라 부모들에 비해 자녀를 타이르는 횟수도 적었고,그나마 주로 타이르는 것은 「인사 잘 할 것」「고운말 쓸 것」등이었다.「새치기를 하지 말 것」「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공원이나 거리를 어지럽히지 말 것」등의 타이름은 다른 나라 부모에 비해 극히 적었다.자녀를 타이르기 시작하는 연령도 다른 나라가 주로 6~10세임에 비해 우리는 11~15세로 크게 늦었다.
인간의 정서적 발달이나 성격형성은 6세를 전후한 시기에 그 80%가 이뤄진다는게 다수설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너무 늦게까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또 그나마 부모부터가 자녀교육 과정에서 책임의식이나 공동체의식에 는 별 관심을 안두니 그 자녀가 커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길 기대하기도 어렵다.잇따른 군기사고를 군기사고로만 보지 않고 거기에서 세대갈등의 위기신호를 발견할줄 아는 슬기가 필요하다.신세대문제를 국가적 화두(話頭)로 삼을 때다.
(논설 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