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서실장 공관의 고위 당정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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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일 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회동했다. 여기서 盧대통령은 김혁규씨를 총리에 지명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는 적절치 않다.

盧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해 선고하기 직전이다. 盧대통령이 기각을 기정사실로 해 차기 총리를 언급하는 것은 근신하는 자세가 아니다. 헌법기관을 존중하는 태도도 물론 아니다. 게다가 盧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미리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참석자들은 사석의 사담(私談)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직무정지 중이라도 사람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장소가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핵심 지도부와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자다. 두세 명만 더 있으면 바로 청와대판 고위당정회의다. 오해를 부를 행동은 피해야 했다.

또 하나 굳이 이 시점에서 차기 총리를 말했어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총리 임명동의안은 17대 국회 원구성 뒤에나 제출할 수 있다. 17대 첫 국회는 6월 7일부터나 열린다. 이를 감안하면 6월 초에 총리를 정해도 늦지 않다. 아직 한달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여권은 총리 내정설을 흘리고, 이도 모자라 대통령이 지명 의지를 내비친 것은 다른 목적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등을 다시 뽑는 6.5 재.보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지적을 받고 이로 인해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당한 盧대통령이 이 같은 구설에 오르는 것은 곤란하다. 더구나 수차례 "말을 조심하겠다"고 다짐한 盧대통령이어서 매우 실망스럽다.

대야 관계에도 좋지 않다. 金씨는 총선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경남지사직을 버려 야당이 곱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모처럼 여야가 상생을 이야기하는 국면에서 한달 뒤에 해도 될 말로 야당을 자극하는 盧대통령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는 당시 모임의 참석자들도 참으로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