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소환제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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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17대 총선은 이제 정치개혁의 과제를 남겨 놓았다. 정치개혁의 과제는 기성정치에 진저리가 난 유권자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민소환제와 면책특권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개혁 0순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의회의 등장 이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의미했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소환제로 대표되는 '참여정치'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참여민주주의는 촛불의 정치를 통해 총선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사실 참여정치는 부패와 무책임으로 상징되는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유권자 저항운동이다.

*** 기성정치에 맞선 저항운동

총선 결과는 낡은 지형에 불어 닥친 새로운 바람의 결합물이다. 낡은 지형은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정치판을 좌지우지해온 지역주의를 말하며 새로운 바람은 참여민주주의라는 포퓰리즘이다. 지역주의 정치지형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그 존재를 과시했다. 한편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요소의 하나로 굳이 우리 말로 바꾸자면 민중주의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는 민주주의가 계승한 자유주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헌정주의다. 헌정주의는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에 대한 전문가적 판단이 다수의 요구와 다를 경우 후자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정치적 장치다.

헌정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해 두 가지 기여를 한다. 하나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다수의 변덕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데 이때 다수는 언제나 동일한 다수가 아니라 가변적인 다수다. 자유주의적 전통은 자칫 다수결주의가 낳을 수 있는 다수의 변덕으로부터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 둘째, 헌정주의는 단기적으론 정치적 소수를 포함하는 것을 넘어 결국에는 다수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 발전의 장기적이고 구조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다. 다수가 언젠가 소수가 됐을 때 헌정주의는 튼튼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우선 정치개혁 과제로 꼽히는 국민소환제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다수가 뽑은 엘리트는 다수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엘리트 교체의 의식이다. 그러나 참여정치는 대표하는 자가 주기적 선거를 기다릴 필요 없이 곧 바로 대표되는 자를 교체할 수 있다. 더구나 국민소환제는 소수의 발의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래 의도와는 반대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동원능력을 가진 소수가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선거에서 다수가 선택한 결정을 역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소환제도 아래에서 '조직화된' 소수는 다수의 결정을 뒤집는 비토집단이 될 수 있다. 비토집단이 많으면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참여정치'는 의도와는 달리 기득권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개혁의 명분으로 만들어진 참여정치의 제도는 후일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로 퇴행하기 쉽다.

*** 정당 활동 위축은 막아야

개혁의 반개혁적 결과는 스위스의 의료개혁 실패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조직적 동원능력을 갖춘 강력한 이익단체인 스위스 의사회는 국민발의와 투표를 통해 다수가 원하지만 자신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의료개혁을 반대해 좌절시켰다.

이제 선거가 끝나고 다시 대표하는 자의 시절로 돌아왔다. 명심해야 할 점은 '참여정치'는 대의정치의 보완재이지 대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복지 등 아직도 저발전된 시민권의 발전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당의 위축을 가져오는 시민사회의 과잉발전은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쓴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치가 아니던가.

강명세 세종硏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