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품 값 ‘면세점이 기가 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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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입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올 들어 한두 차례 가격을 올렸지만 다음달에 10~20%씩 추가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환율이 매일 바뀌는 면세점의 정가가 백화점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빚어졌다.

◆수입품 가격 인상 러시=유럽계 수입 명품업체의 간부 임모(43)씨는 고민스럽다. 연초 달러 환율을 1050원으로 예상하고 세운 사업계획이 확 틀어진 때문이다. 그는 “7월에 제품 가격을 10% 안팎 올렸는데,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브랜드가 줄줄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금·다이아몬드 등을 수입 가공해 파는 골든듀는 20일부터 소매가를 10~25% 올린다. 당초 인상 시점을 27일로 잡았다가 한 주 앞당겼다. 회사 측은 “금값과 환율이 너무 빠르게 치솟아 기존 소비자가로는 팔수록 밑지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소비자들도 마음이 급해졌다. 내년 1월로 출산일이 잡힌 김정현(30)씨는 영국산 유모차를 앞당겨 구입했다. “연말이면 수입 유아용품 값이 오른다고 해요. 이달 안에 웬만한 물건을 미리 장만할 생각이에요.”

내년 2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이모(30)씨도 “금값이 더 오를까 봐 이달 초 서둘러 결혼반지를 맞췄다. 예물로 사려던 수입 시계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입 패션·잡화 가격의 오름세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업계는 이맘때쯤 내년 봄·여름 상품을 주문하는데, 계약금에 적용될 환율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뛴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의 신동한 명품 담당 과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제품 가격이 꾸준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혼수품 등 꼭 장만해야 할 제품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미리 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면세점>백화점 기현상=면세점은 환율 직격탄을 맞았다. 면세점은 전날 매도 환율 기준으로 매일 판매 환율을 바꾸는데,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면세점 정가가 백화점 가격보다 10~20% 더 비싸졌다. 12일 서울 장충동 신라면세점에서 구찌 조이백의 정가는 624달러(88만6267원)로 백화점보다 20만원 이상 비쌌다. 매장 직원은 “VIP 카드 15% 할인에 추가 할인율 20%를 적용해 백화점가보다 싸게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루이뷔통은 11일자로 아예 면세점 판매 가격을 5% 정도 내렸다. 백화점 가격과의 격차가 너무 커지자 어쩔 수 없이 할인에 들어간 것. 10일까지 650달러에 팔리던 ‘스피디30’은 12일 615달러(87만3484원)로 내렸다. 그래도 백화점 가격(84만원)보다 비싸다. 매장 직원은 “환율이 조금 내리면 그때 매장을 찾으라”고 권했다.

자연히 면세점 매출은 급감했다. 업계에선 9월 면세점 업계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5~20% 정도 줄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 시내 면세점 관계자는 “20~30%씩 할인을 해도 백화점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없다. 환율이 더 오르면 중소 면세점부터 버티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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