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의 세상 탐사

라디오 정담, 정치적 논란 피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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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답답해하고 있다. 금융 위기의 대응 책임자는 여럿이다. 하지만 믿음 직한 조타수, 소방수가 나타나지 않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 불신을 담은 패러디 대상이다. 야당은 금융 혼란을 리만브러더스(‘이’명박+강‘만’수 형제) 탓으로 비난한다. 파산한 월가의 투자은행을 빗댔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공직 경력은 적다. 배타적인 과천 관가를 제대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팀과 제대로 손발이 맞지 않는다. 한승수 총리의 존재감은 여전히 약하다.

이 대통령이 이런 평판의 진위를 모를 리 없다. 이들 경제팀은 금융 혼란에 대처하는 전선에 있다. 더구나 국정감사 중이다. 전장에선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게 통상적 교훈이다. 이 대통령은 거기에 일단 충실하려는 듯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직접 나서기로 작정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라디오 연설을 한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년 재임)의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s)을 벤치마킹했다. 벽난로 옆에서 편한 상태의 담화가 노변정담이다.

노태우 대통령도 그것을 흉내 냈다. 월요일에 10분씩 라디오 마이크를 잡았다. 1989년 6월부터 그해 말까지 23번을 했다. 주제는 노사분규 해소, 대학가 친북 운동권 정리, 경제난 극복 등이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소야대로 국정 주도권을 잃은 시절이었다. 발언의 호소력은 허약했다. 그 발언을 뒷받침할 정책 수단이 힘있게 따르지 않은 탓이다. 정부 신뢰는 떨어졌다. ‘물태우’ 소리만 커졌다.

이 대통령의 연설은 13일 첫 방송을 탄다. 청와대는 “정치적 논란이 될 의제는 피한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그런 수동적 접근 자세는 루스벨트 식과는 맞지 않는다. 루스벨트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공황 극복의 자신감을 전파했다. 노변정담은 부드러운 소통의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노변정담은 뉴딜(New Deal)의 반대파를 압박하는 공세적 선전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다.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정치적 긴장을 낳았다.

뉴딜은 패를 다시 돌려 새 판을 짜는 거다. 국가 개조작업이었다. 경제정책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했다. 미국의 전통적 청교도 정신에 도전했다. 대법원은 뉴딜정책 법안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는 반발했다. 노변정담을 통해 국민에게 호소했다.

“대법원이 뉴딜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고 정면 공격했다. 대법원의 태도가 바뀌었다. 당시 라디오는 뉴 미디어다. 루스벨트는 최첨단 소통수단을 효과적으로 장악했다. 그의 온화한 미소 뒤에는 권력의지가 넘쳤다. 노변정담은 국정 메시지 전파의 노련미를 상징한다.

라디오 주례 연설은 위험부담이 많다. 성공 요건은 무엇인가. 국민과 함께한다는 진정성을 설파하는 정도로는 미흡하다. 국정 소회를 펼치는 창구로 그쳐선 감동은 미약하다. 국민의 정치적 역동성을 만족시켜야 한다. 국정 이슈의 실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공기업을 들춰보니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국민 다수는 대통령의 공기업 쇄신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내고, 대기업 노조 파업에 대한 법 집행 신념도 과시해야 한다. 거기에 집단 반발이 따를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 라디오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설득과 추진력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런 반복은 국정 운영의 일관성으로 자리 잡는다. 기업과 국민은 경제 살리기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루스벨트의 고향은 뉴욕주 하이드파크(Hyde Park)다. 그곳에 그의 박물관이 있다. 노변정담 때 썼던 마이크가 전시돼 있다. 그 설명문에는 노변정담 횟수를 27회로 기록하고 있다. 노변정담의 성공은 ‘실천하는 용기 덕분’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 대통령이 벤치마킹해야 할 루스벨트 정치의 진수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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